한국 우울증 치료 최고 권위자 의사…자신이 진료한 환자에 의해 숨져
||2026.07.31
||2026.07.31
2018년 12월 31일, 새해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대한민국 의료계를 뒤흔든 비극이 발생했다.
국내 우울증 치료의 권위자였던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가 자신이 진료하던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것이다.
평생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헌신했던 의사가 정작 자신이 아끼던 환자에게 목숨을 잃은 아이러니한 참변이었다.
사건 당일 공식 진료 시간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임 교수는 과거 조현병으로 입원 치료를 받았던 환자 A씨가 예약 없이 찾아오자 흔쾌히 진료실로 맞이했다.
상담이 시작되자 A씨는 돌변했다. 문을 잠근 뒤 흉기를 꺼내 들었다. 진료실 내부에는 옆방으로 이어지는 대피 통로가 있었다.
임 교수가 혼자 몸을 숨겼다면 화를 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임 교수는 복도로 뛰어나가며 주변 간호사들에게 “도망쳐!”, “신고해!”라고 목청껏 외쳤다.
범인이 대피하던 간호사를 쫓아가려 하자, 임 교수는 범인의 주의를 자신에게 돌리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달리며 소리쳤다.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표적이 된 것이다. 결국 그는 복도 끝에서 미끄러져 쓰러졌고, 치명상을 입고 끝내 숨을 거두었다.
임 교수의 비보는 큰 충격을 안겼지만, 슬픔 속에서 빛난 유족들의 행보는 더 큰 울림을 주었다. 유족들은 “정신질환자들이 사회적 낙인 때문에 치료를 기피해서는 안 된다”라는 고인의 평소 뜻을 이어받아, 가해자를 향한 원망 대신 편견 없는 치료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장례식 조의금 1억여 원과 고인의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의 인세 수익금 전액을 정신질환 환자들을 위한 재단에 기부했다.
정부는 고인에게 청조근정훈장을 추서했으나, 보건복지부는 법적 요건을 이유로 의사자 지정을 한차례 거부했다.
유족들은 긴 법정 싸움을 시작했고, 2020년 9월 법원은 폐쇄회로(CCTV) 영상을 근거로 임 교수의 행동이 적극적인 구조 행위였음을 인정했다. 이로써 고인은 공식 ‘의사자’로 지정되어 명예를 회복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의료기관 내 비상벨 설치와 보안인력 배치를 의무화하고, 의료인 폭행 처벌을 강화하는 일명 ‘임세원법’이 제정됐다.
마지막 순간까지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몸을 던졌던 의사 임세원. 그가 남긴 숭고한 희생은 안전한 진료 환경과 편견 없는 사회라는 묵직한 과제를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