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똑 닮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실업자로 살아온 배우
||2026.08.05
||2026.08.05
대한민국 5공화국 시절 최고 권력자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유사한 외모를 가졌다는 황당한 이유만으로 긴 세월 방송 출연을 금지당하고 실업자 생활을 견뎌야 했던 故 박용식 배우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1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고인의 13주기를 맞아 성우로 활동 중인 딸 박지윤이 뭉클한 추모글을 올려 대중의 가슴을 또 한 번 먹먹하게 하고 있다.
성우 박지윤은 고인의 13주기인 지난 2일 자신의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생전 아버지와 가족들이 함께 나누었던 따뜻한 순간이 담긴 사진 여러 장을 올렸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한국어판 ‘안나’ 목소리로 유명한 박지윤은 “아빠 생각이 나서 혼자 울기도 하지만 잘 지내고 있다”며 “하늘에서 잘 지켜봐 달라. 사랑한다 아빠”라는 애틋한 인사를 건넸다.
1967년 TBC(동양방송) 4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故 박용식은 연기자로서의 만개만을 앞두고 있던 1980년대, 인생 최대의 시련을 맞닥뜨렸다. 신군부 정권이 들어서면서 당시 최고 권력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빼닮은 외모가 방송에 노출되는 것이 정권의 위엄을 손상한다는 황당한 이유로 방송국 출연 정지라는 불이익을 당했던 것이다.
“닮고 싶어서 닮았겠느냐”는 서러운 외침도 소용없이, 그는 약 4년 이상 본업인 연기를 완전히 빼앗긴 채 강제로 마이크와 카메라 앞을 떠나야 했다. 가장으로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박용식은 서울 도봉구 방학동 일대에서 작은 방앗간을 차려 10여 년간 고된 육체 노동을 감내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길고 어두웠던 5공화국 시절이 지나고 정권이 교체된 후인 1991년 7월, 뜻밖의 만남이 성사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 측 비서관이 KBS 스튜디오에서 촬영 중이던 박용식을 찾아와 연희동 자택으로 초대한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은 박용식을 직접 만나 “본의 아니게 가혹한 피해와 고통을 준 것 같아 미안하다”며 지나간 세월에 대해 직접 사과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
방송 출연 금지가 풀린 이후, 박용식은 자신에게 절망을 안겼던 그 ‘외모’를 오히려 독보적인 연기적 무기로 승화시켰다. 드라마 ‘제3공화국’, ‘제4공화국’, ‘임진왜란’ 등 수많은 선 굵은 사극과 현대극에서 전두환 역을 압도적인 싱크로율과 연기력으로 소화해 내며 안방극장의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그 결과 1996년 제32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인기상을 거머쥐며 마침내 한 묵은 한을 연기열정으로 풀었다.
이후에도 영화 ‘투사부일체’, ‘시선’ 등 다양한 스크린과 방송을 가리지 않고 명품 조연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나, 비극은 예치 않은 곳에서 찾아왔다. 지난 2013년 영화 해외 촬영 차 캄보디아를 방문했다가 바이러스성 유비저균에 감염되었고, 귀국 후 패혈증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같은 해 8월 2일 향년 67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정권의 희생양이 되어 억울하게 방앗간을 운영해야 했던 절망 속에서도 끝내 마이크와 대본을 놓지 않고 기품 있는 배우로 살아냈던 故 박용식.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버지를 진심으로 그리워하는 딸의 추모글과 함께, 시대의 비극을 실력으로 깨부수었던 그의 눈부셨던 연기 인생은 대중의 가슴속에 깊은 울림으로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