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경주기행’ 이정은·공효진→변요한, 관객도 반할 웃픈 복수 여행
||2026.08.13
||2026.08.13
복수극이라고 하면 피 냄새와 비장함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경주기행’은 다르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를 위해 8년을 기다린 네 모녀가 마침내 복수여행을 떠나지만, 이들의 여정은 좀처럼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거창한 복수를 꿈꾸기엔 너무나 평범한 가족이다.
이 엇박자가 ‘경주기행’(감독 김미조, 제작 스튜디오하이파이브,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의 가장 큰 무기다. 영화는 복수, 살인 계획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빌리면서도 피와 폭력의 쾌감만 좇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쳐본 적 없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복수를 실행하면서 벌어지는 어설픔과 우왕좌왕을 유머로 풀어내 호감도를 높였다. 긴장해야 할 장면에서 웃음이 터지고, 웃고 있던 순간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스릴러와 가족극, 코미디의 경계를 능청스럽게 오가는 장르적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 건 네 모녀를 연기한 이정은, 공효진, 박소담, 이연이다. 이들은 서로를 누구보다 아끼면서도 어느 순간엔 서로가 정말 지겹고 미운, 말 그대로 모녀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이들이 티격태격 싸우다가도 서로를 챙기는 모습은 자매를 둔 관객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순간들이 적지 않다. 네 배우의 호흡은 웃음을 만들고, 때로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며 관객의 경계를 무장해제한다.
그 중심에는 이정은이 있다. 막내딸을 잃은 엄마 옥실은 8년이라는 시간을 견딘 끝에 복수를 결심한다. 이정은은 딸을 잃은 엄마의 깊은 슬픔과 쉽게 사라지지 않는 분노, 그리고 자식을 향한 모성애를 한 얼굴 안에 켜켜이 담아냈다. 특히 복수라는 행동 아래 감춰진 엄마의 상실감이 선명하게 전해지면서 영화의 감정적인 중심을 잡는다. 이정은이 ‘국민 엄마’라는 수식어를 자신만의 매력으로 한층 확장시켰다.
첫째 장주 역의 공효진은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K장녀의 전형적인 면모를, 둘째 영주 역의 박소담은 냉정하게 상황을 계산하는 브레인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 사이에 선 셋째 딸 동주 역의 이연은 매우 흥미롭다. 이연은 첫째와 막내 사이에서 사랑받고 싶어 하는 동주의 질투심과 돌진하는 행동력을 동시에 살려냈다. 찰진 욕설과 몸을 아끼지 않는 레슬링 액션까지 더해져 영화의 웃음을 책임지는 분량도 상당하다.
반면 변요한이 연기한 백상현은 네 모녀와 정반대편에 서 있다. 가족에게는 일상을 지키기 위한 여행이지만, 그에게 이 여정은 목숨을 건 도주다. 변요한은 파격적인 외형 변화와 서늘한 존재감으로 분위기를 단숨에 바꾸며 네 모녀의 유쾌한 소동에 극도의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경주기행’이 담은 메시지는 복수의 완성이 아니다. 막내를 잃은 가족이 8년 동안 각자의 방식으로 품어온 상처를 꺼내놓고, 서로에게 기대며 다시 살아갈 힘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경주라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이들의 여행은 가족의 애증과 연대를 확인하는 여정으로 남는다.
장르의 무게를 덜어내고 웃음과 눈물을 자유롭게 오가는 덕분에 ‘경주기행’은 생각보다 훨씬 편하게 관객을 끌어당긴다.
배우들의 앙상블을 보는 재미도 확실하다. 극장에서 함께 웃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울컥하는 경험을 원한다면 올여름 ‘경주기행’은 충분히 선택할 만한 작품이다.
러닝타임 111분. 8월 26일(수) 극장 개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