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경주기행‘ 이정은, 모성애도 연기력으로 설득했다
||2026.08.14
||2026.08.14
엄마를 연기하려면 실제로도 엄마여야 더 잘한다는 통념이 있다. 오래 통용된 이 말은 영화 ‘경주기행’ 앞에서 힘을 잃는다. 네 딸을 키워낸 엄마 옥실을 연기한 이정은은 결혼도 출산도 경험하지 않은 배우다. 그러나 스크린 속 옥실을 보면서 그 사실을 떠올리는 관객은 없을 터다.
‘경주기행’(감독 김미조, 제작 스튜디오하이파이브,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를 위해 8년의 기다림 끝에 죽이는 여행을 떠난 네 모녀의 가족 복수극이다.
보통의 가족이 치밀한 듯 어설프게 실행에 옮기는 살인 계획은 번번이 엇박자를 내며 예측 불허의 전개로 이어진다. 스릴러의 긴장감과 예상치 못한 웃음, 가족 드라마의 공감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신선한 재미가 만들어진다. 긴장해야 할 장면에서 웃음이 터지고 웃던 순간 어느새 눈물이 흐른다.
다층적인 재미의 중심을 붙드는 것이 이정은이다. 옥실은 막내딸을 잃은 엄마다. 하지만 이정은이 만든 옥실은 슬픔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8년을 버텨낸 상실과 꺼지지 않는 분노, 남은 세 딸을 향한 애틋함이 한 얼굴 안에 겹겹이 놓여있다.
웃기는 장면에서도 인물의 바닥에는 슬픔이 깔려 있고, 울리는 장면에서는 자식이 지긋지긋한 순간의 표정이 배어 나온다. 감정을 크게 터뜨리는 대신 켜켜이 쌓아 올리는 것 같다. 복수라는 행동 아래 감춰둔 엄마의 빈마음이 선명해지면서 영화의 감정적인 중심이 잡힌다.
연기는 경험의 총량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정은은 그간 겪어보지 않은 삶을 관찰로 메웠고, 결과적으로 네 딸을 길러낸 엄마로서 설득력을 얻었다. '국민 엄마'라는 수식어가 관습적인 호칭에 머물지 않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