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경주기행‘, ‘오디세이‘·’스파이더맨 4’ 사이에서 내뿜는 존재감
||2026.08.27
||2026.08.27
한국영화는 오랜 시간 복수의 손을 남자에게 맡겨왔다. 딸을 잃은 아버지, 동생을 잃은 형, 뒤늦게 나타난 조력자 남자. 어머니의 역할은 대체로 옆에서 우는 쪽이었다.
그러나 영화 ‘경주기행’(감독 김미조, 제작 스튜디오하이파이브,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은 그 손을 엄마 옥실(이정은 분)에게 줬다. 그리고 그 손이 무슨 일을 하는지 끝까지 지켜보게 만든다.
노란 봉고차 한 대와 단체 티셔츠, 트렁크에 실린 가해자 한 명으로 출발하는 이 영화는 사적 복수를 다루면서도 응징의 쾌감 대신 상처를 극복해야 할 사람들의 표정을 오래 들여다본다. 지난 26일 극장 개봉한 ‘경주기행‘은 첫날 3만 6795명을 동원하며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 죽이려고 떠난 가족여행
‘경주기행‘은 8년 전 수학여행에서 막내딸 경주를 잃은 엄마 옥실과 세 딸 장주(공효진 분), 영주(박소담 분), 동주(이연 분)의 이야기다. 감형을 받고 풀려난 가해자 백상현(변요한 분)을 잡아 그를 직접 처단하기 위한 가족여행을 계획한다.
노란 봉고차에 올라탄 네 사람은 단체 티셔츠까지 맞춰 입었다. 겉모습만 보면 흔한 가족여행 같지만 트렁크에는 결박된 가해자가 실려 있다. 휴게소에 들르고 펜션을 잡고, 평범한 일들이 긴장으로 바뀌는 이유다.
김미조 감독은 사적 복수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잔혹한 응징을 전시하지 않는다. 대신 웃음을 섞은 블랙코미디를 택했다. 차 안에서 벌어지는 자매들의 사소한 말다툼, 엄마의 잔소리,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어설픈 실행력이 미소짓게 만든다. 웃음이 커질수록 이들이 무엇을 하러 왔는지 떠올랐을 때의 서늘함도 커진다. 김 감독이 의도한 대로 이 영화 메시지는 응징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의 상처 극복이다.
■ ‘퍼플 마그마‘ 이연의 열연
큰 수확은 셋째 딸 동주를 연기한 이연이다. 집에서 항상 구박 받는 천덕꾸러기 동주는 언니들에게 치이고, 엄마에게 혼나기 일쑤다. 하지만 링 위에선 '퍼플 마그마'라는 이름의 인기 프로레슬러다.
이연은 집안에서의 위축된 몸짓과 링 위의 과장된 몸짓 사이를 능청스럽게 오갔다. 어깨를 움츠리고 눈치를 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가장 먼저 몸을 쓴다. 가족 안에서 가장 약한 존재가 실제로는 가장 강한 체력을 가졌다는 아이러니가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경주기행’은 극장에서 볼 때 훨씬 매력적인 작품이다. 좁은 봉고차 안의 수다와 침묵,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 변화는 큰 화면에서만 제 값을 한다.
'경주기행'은 상업영화가 처음인 여성 감독, 여성 서사, 여성 스타 배우들이 꾸렸다. 대형 외화 '오디세이'(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와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감독 데스틴 크리튼) 사이에서 한국영화 1위로 출발한 것도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