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시험도 안보고 바로 들어갔다는 여배우…논란이 안된 이유
||2026.10.01
||2026.10.01
대중에게 푸근하고 친숙한 ‘국민 엄마’로 각인된 배우 선우용여의 학창 시절은 익히 알려진 이미지와는 궤를 달리한다.
방송국 카메라 앞이 아닌 낯선 외국인들의 집 문을 두드리고, 급기야 외교관이 되겠다며 국가고시 시험장까지 향했던 그의 청춘은 거침없는 도전과 뜻밖의 우회로가 빚어낸 한 편의 극적인 드라마다.
선우용여의 첫 번째 장래 희망은 무대에 오르는 발레리나였다. 고등학생 시절까지 발레에 매진하며 무용수의 꿈을 키웠으나, 명작 ‘백조의 호수’ 공연을 관람한 뒤 자신의 체형이 전문 발레리나로서 한계가 있음을 냉철하게 인지했다. 꿈을 완전히 꺾는 대신 그는 한국무용으로 방향을 틀며 유연하게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이 시기 돋보인 것은 어린 학생 신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남다른 생활력과 돌파력이었다. 자택 2층을 연습실 삼아 학생들을 가르치는가 하면, 이태원 일대의 외국인 가정을 직접 찾아다니며 무용 과외를 뛰었다.
언어 장벽이 높았던 시절이었음에도 맨몸으로 부딪히며 자신을 홍보하고 학생을 구하는 배포를 뽐냈다. 이태원에서의 과외 활동은 선우용여의 인생에 또 다른 거대한 파도를 몰고 왔다.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외교관과 대사관 직원들의 당당한 삶에 매료된 것이다. 무용수를 꿈꾸던 여고생의 시선은 곧장 외교관으로 향했다.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특유의 기질을 발휘해 실제 외무고시까지 응시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비록 철저한 준비 없이 치른 시험이었기에 합격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지만, 그의 남다른 실행력을 증명하는 일화다.
외교관의 꿈이 무산된 직후, 운명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새로운 문을 열어젖혔다. 친언니로부터 연극영화과에서 무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는 솔깃한 정보를 듣게 된 것이다.
이 우연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에 진학한 그는, 숨겨져 있던 자신의 진짜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무시험 입학으로 연기와 연을 맺은 학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치러진 탤런트 시험에서 당당히 1등을 거머쥐며 연예계에 화려하게 입성했다.
발레리나의 토슈즈를 벗고 외무고시 수험표를 쥐었다가, 결국 카메라 앞에서 대본을 들게 된 선우용여.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매 순간 낯선 길로 거침없이 뛰어들었던 청춘의 치열한 궤적이 없었다면, 수십 년간 안방극장을 든든하게 지켜온 대배우의 명연기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