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연예인, 생 마감하려 한강에 두번 뛰어내렸는데…헤엄쳐 살아남아
||2026.10.13
||2026.10.13
어린 나이에 삶을 포기하려 한 순간을 두 차례나 겪었지만, 훗날 시대를 대표하는 히트곡을 직접 만들어낸 가수가 있다. 1990년대 한국 힙합과 댄스 음악의 선구자로 불리는 가수 현진영이다.
현진영은 어린 시절부터 순탄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특히 중학생 무렵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큰 충격에 빠졌고, 집안 형편까지 어려워지면서 방황이 시작됐다고 여러 방송을 통해 털어놨다.
어머니의 빈자리와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아직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 SBS ‘스타부부쇼 자기야’ 등에 출연해 당시 한남대교에서 한강으로 뛰어드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고백했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이후에도 경제적인 어려움과 아버지의 병환 등이 겹치면서 다시 한번 비슷한 선택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번째 순간에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스스로 물에서 빠져나왔다고 회상했다. 이후 힘겨운 시간을 버텨낸 현진영의 인생은 음악을 만나면서 크게 달라졌다.
춤과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그는 이수만에게 발탁돼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이태원 등에서 춤 실력을 키웠던 그는 국내 대중음악계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을 선보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1990년 ‘현진영과 와와’로 데뷔한 그는 당시 국내에서는 생소했던 힙합과 흑인 음악의 요소를 대중음악에 적극적으로 접목하며 주목받았다. 독특한 패션과 춤 역시 젊은 세대 사이에서 화제가 됐고, 이후 등장한 수많은 댄스 가수들에게 영향을 준 인물로 평가받게 됐다.
특히 1992년 발표한 2집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강렬한 랩과 중독성 있는 멜로디, 현진영 특유의 춤이 어우러진 이 곡은 각종 가요 프로그램에서 장기간 정상에 오르며 그의 대표곡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까지도 1990년대 가요계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노래 중 하나다.
‘흐린 기억 속의 그대’는 현진영이 이탁과 함께 작사·작곡·편곡에 참여한 곡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오랜 기간 저작권 문제로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올리지 못했던 현진영은 2022년 약 30년 만에 저작권자로 이름을 추가하며 다시 한번 화제를 모았다.
물론 이후의 인생 역시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전성기 도중 여러 문제로 활동에 큰 위기를 맞았고 긴 공백과 재기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그럼에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은 그는 재즈를 공부하는 등 음악적 영역을 넓히며 꾸준히 무대로 돌아왔다.
삶을 포기하려 했던 10대 소년은 결국 살아남아 자신의 음악을 세상에 내놓았고, 그 노래는 3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대중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현진영 역시 방송과 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며 자신의 굴곡진 지난 시간을 솔직하게 공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