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대신 "야, 어이"로 불렸다…닥터X 병원장 손현주의 단역 시절
||2026.10.14
||2026.10.14
병원장 집무실에 앉은 부승권은
말수가 적은데도 방 안 공기를 쥐고 있습니다.
SBS ‘닥터X’ 첫 주를 보신 분들이라면
그 묵직한 눈빛, 쉽게 잊기 어려우실 거예요.
그런데 ‘닥터X’ 속 그 병원장이 던진
한마디가 제 귀에는 유독 오래 남았습니다.
천재 외과의 계수정의 이력서를 구기며
“어차피 자르면 되는 꼬리”라고 했지요.
이 대사를 손현주가 한다는 게
참 묘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자신이 한때 ‘야, 어이’ 소리를 들으며
언제 잘릴지 모르는 단역 배우였으니까요.
2주 안에 못 보여주면 끝이던 시절
손현주는 1991년 KBS 공채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공채 출신이라고
대접받던 시절은 아니었대요.
촬영장에서 이름 석 자 대신
‘야’, ‘어이’로 불렸다고 하니까요.
2017년 3월, 영화 ‘보통사람’ 개봉을 앞두고
그는 그 시절을 담담하게 꺼냈습니다.
그때는 배역이 툭하면 바뀌어서
2주 안에 뭔가 보여주지 못하면
작품에서 정리되는 일이 흔했다고요.
오죽하면 ‘2주짜리’라는 말까지 있었답니다.
요즘 말로 치면 수습 기간도 없이
날마다 시험을 치르는 셈이었겠지요.
남의 대본을 펼쳐 놓고 공부한 단역
제가 이 인터뷰에서 가장 놀란 대목은
고생했다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손현주는 선배들의 대본을 구해서
방송 전 콘티와 하나하나 맞춰 봤대요.
종이에 적힌 글자가 화면에서는
어떤 동작과 표정으로 바뀌는지,
남의 숙제를 들여다보며
자기 공부로 삼았던 겁니다.
대사 몇 줄 없는 단역이 그랬다는 건
언제 올지 모를 큰 배역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그는 매 장면을 마지막처럼 찍었다고 했습니다.
꼬리였던 사람이 머리 자리에 앉기까지
만 61세가 된 지금, 손현주는
병원 꼭대기에 앉은 병원장을 연기합니다.
‘닥터X’ 첫 회는 시청률 11.4%로
산뜻하게 출발했다고 하지요.
더 눈길이 가는 건 이 사람이
‘야, 어이’ 시절을 잊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휴대전화에 무명 연극배우 30여 명의
프로필을 담아 다니며 소개해 준다고 해요.
부승권은 사람을 꼬리로 보지만,
손현주는 꼬리 자리의 설움을 압니다.
그래서 그 대사가 더 차갑게 들리는 거예요.
잘릴까 떨어 본 배우만이
자르는 사람의 냉정함을 제대로 그립니다.
저는 이런 배우가 오래 남는다고 믿어요.
화려한 출발보다 남의 대본 앞에서
보낸 밤들이 결국 얼굴에 남으니까요.
부승권이 어떤 속내를 드러낼지,
금요일 밤이 벌써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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