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종합] ‘킬링타임’ 류혜영의 생존법…"기다리는 건 감옥 같다"
||2026.10.14
||2026.10.14
배우 류혜영이 익숙한 껍데기를 벗고 새로운 세계로 걸어 나왔다.
tvN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성보라는 그녀에게 큰 사랑을 안겨준 이름이지만, 동시에 넘어야 할 벽이기도 했다. 작품이 자신을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대신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유튜브를 시작하고, 신체를 단련했다. 류혜영의 변화는 스스로 움직이겠다는 굳센 의지다. 영화 ‘킬링타임’은 그 출발점에 놓인 작품이다.
이달 21일 개봉하는 ‘킬링타임’(감독 장준엽, 제작 에스엘엘중앙 주식회사·영화사안다미로, 배급 더타이틀)은 사고로 모든 것을 잃은 인터넷 방송 크루 킬링타임이 재기를 위해 찾은 폐병원에서 의문의 존재에게 습격당하고, 무자비한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펼치는 타임어택 스릴러. 류혜영은 킬링타임의 스트리머 연우 역을 맡아 생존 액션을 소화했다.
14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맥스무비와 만난 류혜영은 2년 전 촬영한 ‘킬링타임’을 다시 마주하며 당시의 자신을 되짚었다. 2024년 10월 한 달 안에 촬영을 마쳐야 했던 현장은 20회차라는 빠듯한 일정 속에서 모두가 힘을 모아 완주를 목표로 달렸다. 제한된 예산과 제작 여건은 영화가 감당해야 할 현실적인 조건이었다. 류혜영은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완성본을 처음 봤다. 촬영 후 2년 동안 많은 캐릭터를 거쳐온 탓에 한동안 잊고 있던 연우를 다시 떠올리는 시간이었다.
“요즘엔 촬영하고도 개봉하지 못하는 작품들이 많아서 걱정은 했다. 그렇지만 개봉은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촬영했던 2024년 10월,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뜨겁고 행복했던 기억을 간직하려고 했다.”
■ 15초 액션에 숨이 찼던 배우, 러닝으로 바꾸다
‘킬링타임’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오래전부터 몸을 쓰는 액션 장르에 대한 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액션스쿨에 가기 전부터 설렘이 컸지만 훈련을 시작하자 현실은 달랐다. 고작 15초 분량의 액션을 익힌 뒤에도 숨을 돌리는 데 15분이 필요했다고. 촬영 현장에서 그럴 수는 없다는 위기감이 류혜영을 달리게 했다.
헬스 트레이너의 권유로 한강에서 러닝을 시작했다. 성인이 된 뒤 처음으로 20분을 쉬지 않고 달린 날에는 공원 평상에 대자로 뻗어 30분을 쉬어야 했다. 하지만 다음 날에도 달렸고, 두 번째 러닝에서는 30분을 뛰고도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슬로우 러닝을 익혀 일주일에 5~6회씩 꾸준히 달렸다. 두 달 뒤 다시 찾은 액션스쿨에서는 달라진 몸을 체감했다. 짧은 액션 동작 여러 개를 익히고도 이전처럼 쉽게 지치지 않았다.
“달리기가 싫어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천천히 달리고 싶다. ‘킬링타임’이 제게 그런 출발점이 됐다.”
슬로우 러닝은 액션을 소화하기 위한 준비에 머물지 않았다. 영화 속 청춘들의 스타일링과 움직임을 고민하면서 재난영화 ‘트위스터스’(2024)를 참고했고, 촬영 내내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훈련도 거쳤다. 라이브 스트리밍과 맞물린 이야기인 만큼 영화가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눈여겨봤다. 류혜영은 “이야기를 가지치기하다 보면 더 해볼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며 2편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함께한 배우들과의 관계도 현장을 지탱한 힘이었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지만 신인 배우들이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먼저 다가갔다. “선배라는 거리감을 만들지 않으려 일부러 긴장을 풀고 충북 음성의 숙소에 머물던 날에는 개천을 따라 달리며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배우 남윤수에 대해서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발견한 매력이 있다고 했다.
“윤수는 보면 볼수록 놀랍다. 함께 활동할수록 저와 정반대의 성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훨씬 안정적인 사람이다. 저는 요즘 여러 고민을 내려놓는 시기인데 윤수는 삶에 순응하는 법을 일찍 배운 사람처럼 느껴진다.”
■ ‘성보라’ 껍데기 벗고 직접 일거리 찾기까지
류혜영에게 20대는 자신을 이해하기보다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시기였다. 부모의 보호에서 막 벗어난 미성숙한 상태에서 세상에 대한 기대는 컸고, 정작 자기 자신을 향한 믿음은 부족했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자신과 스스로 평가하는 자신이 충돌하면서 타인의 말과 시선이 상처로 다가왔다.
“자존감이 낮은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보니 모든 게 가시 같고 아팠다. 사실 제가 생각을 바꾸면 세상은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고, 좋은 사람도 많다. 그런데 스스로를 나락으로 밀어 넣었던 것 같다.”
‘응팔’ 속 성보라라는 이름은 양면성을 지녔다. 대중이 자신을 기억해준다는 사실은 고맙지만, 작품 관계자들마저 특정 캐릭터로만 자신을 바라본다면 연기할 수 있는 영역이 좁아질 수 있다는 불안이 뒤따랐다. 20대에는 강박이 컸지만 최근 2년간 여러 작품에 도전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저를 보여줄 기회를 기다리는 대신 직접 관계자들을 만나고 새로운 모습을 알리기 위해 움직였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유튜브 채널 ‘류혜영 레몬과 밀치회’도 그 연장선에 있다. 시작을 결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배우로서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할 다른 창구가 필요했고, 촬영을 마친 작품이 공개되지 않을 때도 자신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근황을 전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성보라와는 다른 자신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다. 채널 이름에는 좋아하는 음식인 밀치회와 레몬,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한 애정이 담겼다.
“구독자들이 제 팬이라고 생각한다. 실버 버튼이 목표인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제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보여드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수익이 크지는 않지만 월세를 낼 수 있을 정도라도 제가 직접 벌 수 있는 창구가 있다는 게 중요하다.”
류혜영에게 가장 답답했던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선택받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작품을 열심히 준비해도 공개 여부를 장담할 수 없고, 연기할 의지가 있어도 기회가 저절로 찾아오지는 않았다. “결국 직접 아는 사람들에게 연락해 일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예능 출연을 부탁하고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섰다.
“사지가 멀쩡한데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게 감옥 같았다. 왜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배우도 직접 영업할 수 있잖다.”
류혜영은 자신을 달팽이에 비유했다. 껍데기 안에 머물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집을 벗어던진 민달팽이가 된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마음먹은 지 2년이 넘었고, 그사이 여러 작품과 활동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보여줄 기회를 얻었다. 과거의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은 스스로 선택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제가 마음먹고 선택한 작품들이라 후회하는 건 없다. 하루하루 할 일이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
‘킬링타임’에서 액션을 위해 달리기 시작한 류혜영은 이제 자신의 삶을 위해서도 달린다. 기다림을 견디는 대신 직접 문을 두드리고, 익숙한 이미지에 머무르는 대신 새로운 얼굴을 꺼내 보인다. 배우 류혜영의 다음 장면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