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종합] "차에서 감정 털어내"…‘실낙원’ 김현주의 롱런 비결
||2026.10.16
||2026.10.16
배우 김현주가 아들을 잃은 뒤 멈춘 시간과 상실을 견디는 엄마의 내면을 연기로 빚었다. 모성애라는 감정에 기대기보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사람이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는지 표현했다고 한다.
김현주가 연상호 감독의 영화 ‘실낙원’(제작 와우포인트, 배급 CJ ENM)에서 맡은 류소영은 아들 류선우(배현성 분)를 되찾고도 온전히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는 인물이다. 9년 만에 돌아왔다는 사실보다 아들이 없는 동안 엄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주목한 김현주의 해석은 인물의 기묘한 행동에 의미를 부여했다.
김현주는 16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맥스무비와의 인터뷰에서 “평소 제가 출연한 작품을 잘 못 본다. 현장에서도 모니터를 많이 하지는 않는 편”이라며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영화를 봤을 때 제대로 화면을 마주하지 못했다. 이후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다시 관람하면서 비로소 작품 전체를 바라볼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제가 연기할 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생각나서 울었다. 제 연기를 보고 운 건 아니다. (웃음) 두 번째 볼 때는 영화 전체가 눈에 들어오면서 아쉬운 점도 보였다. 류소영이었던 저를 내려놓고 관객의 시선으로 보려니 더 힘들더라.”
류소영을 이해하는 김현주의 출발점은 상실이었다. ‘실낙원’이 모성애만 그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소중한 존재를 잃었을 때 마주하는 감정에 관한 영화라고 봤다고. 특히 미혼인 자신이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은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감정이 아니기에 조심스러웠다고 털어놨다.
“모성애는 제가 흉내 낼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은 표현하기 어렵고 조심스럽다. 오히려 제가 엄마가 아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었던 역할 같다. 이번 영화를 통해 상실이라는 게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인지, 아니면 그 사람을 잃은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한 그리움인지 깊이 생각하게 됐다.”
9년 만에 돌아온 아들 선우를 마주한 소영의 반응도 이같은 맥락에서 접근했다. 살아 돌아올 가능성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아들이 눈앞에 나타났다고 해서 곧바로 과거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을까. 김현주는 “낯선 재회의 감정을 반가움만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죽은 줄 알았던 존재가 돌아왔다는 사실에는 기쁨과 섬뜩함, 현실감이 사라지는 듯한 기묘함이 공존한다”고 봤다.
특히 그녀가 공들인 것은 류소영의 일상 속 공허함이다. 겉으로는 평범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의 눈빛에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남아 있다. 아들이 돌아온 뒤에도 류소영은 가상현실 속 아들을 찾아 ‘낙원의 아이들’을 실행한다. 현실의 아들을 먼저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도 가상세계의 아이에게 집착하는 행동은 그녀가 아직 상실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면 알람이 울렸을 때 아들을 보러 갔을 거다. 그런데 소영이는 매일 아침 공허하게 눈을 뜬다. 진짜 아들이 돌아왔는데도 차 안에서 가상현실 속 아들을 먼저 보는 모습을 통해 그 감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저예산 영화라 촬영 기간이 짧았던 만큼 감정을 충분히 숙성하기보다 순간의 집중력으로 장면을 완성해야 했다. 김현주는 거칠고 생생한 날것의 인물로 받아들였다.
“시간이 더 주어졌다면 고민이 많아지면서 감정을 덜어내거나 더했을 수도 있다. 지금과 같은 감정이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리적인 시간이 짧아 순간적인 집중도로 밀도 있게 작업했다.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다음 작품에서 채워가는 게 배우로서 발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연상호 감독과의 작업은 김현주가 자신도 몰랐던 의구심을 연기적 도전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연 감독은 배우에게 많은 지시를 내리기보다 각자 표현하는 방식을 존중한다고 한다. 덕분에 큰 틀 안에서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됐고, 자신을 향한 연 감독의 신뢰 덕분에 한층 편안하게 인물에 몰입할 수 있었다.
김현주는 “매니저와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감정을 털어내고, 작품에 대한 기사나 반응도 의도적으로 많이 보지 않는다. 오래 연기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연기에 대한 집착보다 부족함을 인정하면서 자신을 지켜가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김현주가 어둡고 무거운 인물에만 머물고 싶은 것은 아니다.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2011) 같은 밝은 캐릭터도 다시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한동안 비슷한 역할이 자연스럽게 들어오지 않았을 뿐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든 도전할 생각이다.
“인물을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대본에 나오기 전의 전사를 스스로 만들어본다. 시작이 같아도 전사가 다르면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제가 경험하지 못한 감정을 표현해보는 게 재미있다.”
최근 tvN 드라마 ‘100일의 거짓말’(극본 류보리, 연출 유인식)로 시청자들의 호응을 체감하고 있다는 김현주. “멋있는 캐릭터라 좋았는데 관심을 가져주셔서 너무 좋다”고 남은 전개를 기대해 달라고 예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