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선빈x유재명 ‘수능 출제의 비밀’, 웃음 터지는 출제위원들의 소동
||2026.10.19
||2026.10.19
(*이 기사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수능은 인생을 바꾸는 기회이자 인생 처음으로 세상의 불공평함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같은 시험지를 받아 같은 시간 동안 문제를 풀지만 시험장에 들어서기까지 학생들이 거쳐온 환경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수능, 출제의 비밀’(감독 이용재, 제작 조이래빗, 배급 바이포엠스튜디오)은 그 시험 문제를 만드는 사람들을 조명했다. 한국에서 가장 민감한 수능시험을 출제하는 국가 2급 기밀 조직. 40일 간 외부와 단절된 채 문제를 만들어야 하는 출제본부가 이야기의 주요 무대다. 지방 소도시의 국어 교사 맹보람(이선빈 분)이 얼떨결에 합류하면서 수능이라는 익숙한 소재를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한국영화에서 그동안 다뤄지지 않았던 수능 출제 과정 을 소재로 한 점이 흥미롭다. 한 글자의 오타도, 특정 집단에 유리하다는 시비도 허용되지 않는 상황. 출제위원들이 지문 하나를 두고 벌이는 논쟁을 통해 완벽하게 공정한 시험을 만든다는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보여준다.
특히 맹보람이 품은 정의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다. 보람은 문제 없는 문제를 만드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사교육의 중심지인 대치동 학원가에서 훈련받은 학생들만 유리한 시험이 되지 않도록, 누구에게나 공평한 문제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수능이 교육의 공정성을 가늠하는 척도처럼 여겨지는 현실에서 맹보람의 신념은 우직하면서도 따뜻하다. 시험의 정답을 찾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정답에 도달할 기회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졌는지 묻는 일이기 때문.
이선빈은 맹보람을 옳은 인물로만 밀어붙이지 않았다. 때로는 융통성 없어 보이고 답답할 만큼 원칙을 고수하지만 바로 그 고집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믿음직한 정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살렸다.
출제위원장 윤주열(유재명 분)과 검토위원장 박경태(김영민 분)의 대립은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원칙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웃음이 발생하는 것이다. 윤주열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편법을 쓰면서도, 진정성을 추구하는 어른의 모순을 출제본부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문제를 만드는 사람들 역시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사실이 코미디가 되는 셈이다.
‘공정성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수능 출제라는 소재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흥미롭다. 다만 이 영화는 출제 시스템의 모순을 깊이 파헤치기보다 출제위원들의 개인적인 사연과 내부 갈등에 무게를 실었다. 이 과정에서 수능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향해 뻗어나갈 수 있었던 질문은 인물들의 소동 속에 다소 희미해진 부분은 있다. 물론 보는 동안에는 배우들의 호흡과 상황이 빚어내는 유머가 큰 웃음을 안긴다.
‘수능, 출제의 비밀’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험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출제위원들의 이야기를 통해 정의의 의미를 환기시켰다. 그 정의가 시험지 바깥의 현실까지 건드리기엔 영화가 준비한 질문이 평이하다. 신선한 문제를 출제하는 데 성공했지만 관객의 머릿속에 오래 남을 만한 해답까지 준비하지는 않았다.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99분. 10월 28일 개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