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종합] 박보경 “아이 때문에 못 한다는 말 하기 싫었다”…소중한 ‘로또 1등’
||2026.10.20
||2026.10.20
배우 박보경에게 박 부장 캐릭터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으로서, 한 사람의 배우로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지 되묻게 한 인물이었다.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위로할 때와 질책할 때를 명확히 구분하는 리더. 박보경은 이 인물을 통해 자신이 지향하는 어른의 모습을 발견했다.
극본과 연출을 맡은 윤영빈 감독은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만 부각하기보다 모성을 지키면서도 업무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여성을 그리고 싶어 했다. 박보경도 이 방향성에 공감했다. 아이 때문에 업무에 소홀했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얼마나 치열하게 일해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후배들에게까지 존중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보경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오투타워에서 진행된 맥스무비와의 인터뷰에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힘들게만 그려지는 워킹맘이 아니라 모성을 잃지 않는 여성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박 부장은 일을 잘하는 것뿐 아니라 부하 직원들에게 존중받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박보경이 출연한 티빙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극본·연출 윤영빈)는 위아래로 치이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팀장 공은태(이준혁 분)가 로또 1등에 당첨된 후 사직서 대신 당첨금 13억 원을 품고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출근하는 K직장인 오피스 드라마. 박보경은 홍성 인터내셔널 영업부 부장 박현숙을 연기했다.
흥미로운 점은 박 부장이 처음부터 여성으로 설정된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윤 감독의 제안으로 성별이 바뀌면서 박보경이 합류했다. “감독님이 좋은 여자 상사는 어떤 모습일지 물어보셨다. 일을 잘하면서도 경조사가 있을 때 300만 원을 건네고 가는 사람이라고 하시더라. 그 말을 듣자마자 어떤 인물인지 이해가 됐다”고 캐릭터를 이해한 지점을 털어놨다.
박 부장의 권위는 목소리를 높이거나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박보경은 정적인 권위를 지닌 인물을 만들기 위해 시선 처리에 공을 들였다. 할 말이 있을 때 상대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주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를 존중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박 부장은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건 사람이다. 혼낼 때와 위로할 때가 명확한 모습도 멋있었다. 저도 박 부장에게 배운 게 많다. 두 수 앞을 내다보면서 상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은 배우고 싶다.”
박보경이 회사 생활을 경험한 적은 없지만 윤 감독과 대본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직장 내 회의를 떠올렸다고 한다. 대사를 맞추고 인물의 행동을 점검하는 과정이 실제 조직의 의사결정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박 부장의 대사 중 박보경의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고, 해내지 못하면 잊고 싶은 기억이 된다’는 말이다. 대본 속 문장이 실제 삶과 맞닿는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힘들었던 시간은 어느새 지나갔고, 이제는 딸이 촬영 현장에 가는 자신을 응원해주는 존재가 됐다.
“딸과 인사하고 현장에 나왔는데 어느 순간 아이가 커서 ‘잘 갔다와’라고 해주더라. 힘든 순간을 지나고 나니 육아도 추억이 됐다. 너무 고마웠다. 그 대사는 저의 과거의 시간을 다시 해석하게 해주는 말이기도 했다.”
박보경의 삶에서 연기와 육아는 오랫동안 서로 양보해야 하는 영역이었다. 남편 진선규가 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신은 아이들을 돌보는 쪽을 택했다. 아이들에게 연기를 다시 하고 싶다는 마음조차 드러내지 않았다는 그녀는 “나의 바람이 아이들에게 부담으로 전해질까 조심스러웠다”고 털어놨다.
복귀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 찾아왔다. 하원한 아이와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작품 출연 제안을 받은 것.
“촬영할 땐 ‘아이들 때문에 일을 못 한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에는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도 티 내지 않았다. 그런데 매체 연기를 하고 제가 신나서 현장 얘기를 하니 남편이 ‘우리 아내 신났네’라고 했다. 아이들을 핑계로 삼지 않으려면 연기도 더 잘하고 싶었다.”
박보경은 공백기를 거치며 일에 대한 마음가짐도 달라졌다고 했다. 20~30대에는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자신이 잊힐까 두려워했다면, 이제는 떠나보낼 줄도 알게 됐다. 현장에서 과거에 함께 작업했던 이들을 다시 만나는 일만으로도 기쁨을 느낀다고.
최근에는 긴 공백을 견디는 배우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됐다는 말에 책임감도 느낀다.
남편 진선규와 같은 작품에서 상대 배우로 만나는 일은 아직 조심스럽다. 서로의 연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응원하지만, 막상 극 안에서 마주하면 배우가 아닌 부부의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볼 것 같아서다.
‘2026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 진선규가 자신보다 아내의 수상을 더 기뻐하며 눈물을 흘린 순간 역시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상대의 성취를 온전히 기뻐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고 말했다. 박보경은 올해 넷플릭스 시리즈 ‘레이디 두아’로 여우조연상을 차지했다. 진선규는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함께 시상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박보경이 바라는 다음은 화려한 성공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해내는 삶이다. 자신의 시간을 통과하며 얻은 경험을 다음 역할에 담아내려고 한다. 긴 공백은 사라진 시간이 아니라 지금의 그녀를 만든 시간이었다.
“2026년은 저에게 인생의 로또인 것 같다. 상도 받고 작품도 잘되고 제목을 따라가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