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종합] “부모는 울타리 역할만”…유재명 밝힌 ‘수능 출제의 비밀’
||2026.10.21
||2026.10.21
배우 유재명이 이번에는 악역보다 까다로운 캐릭터와 마주했다. 영화 ‘수능, 출제의 비밀’에서 그가 연기한 문주열은 수능 출제위원장이라는 권위적인 자리에 있으면서 욕심 많고, 왠지 미워할 수 없는 면모를 지닌 어른이다. 인기 드라마 ‘비밀의 숲’ 등 여러 작품에서 강렬한 악역을 소화해 온 유재명에게 이번 캐릭터는 도전이기도 했다. 악역은 얼마든지 연기할 수 있지만, 자칫 비호감으로 비칠 수 있는 인물을 관객이 미워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은 숙제였기 때문이다.
이달 28일 개봉을 앞둔 유재명은 설렘과 자신감을 드러냈다. 21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맥스무비와의 인터뷰에서 “개봉을 앞두니 설렌다”며 “영화를 보는 내내 쑥스럽지만 우리가 잘해냈구나 싶었다. 부국제 관객들의 호응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뿌듯했다”고 완성본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출연을 결심하기까지 고민도 적지 않았다.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신선한 소재와 코미디적인 요소가 마음에 들었지만,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부담스러웠다. 유재명은 “제가 ‘비밀의 숲’ 등 악역을 많이 했다. ‘수능 출제의 비밀’이라는 대본을 읽었을 때 신선하고 재미있는 느낌은 받았지만 악역은 아닌 것 같았다”며 “악역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비호감이고 재수 없는 인물이라 고민했다. 안 하겠다는 것보다 이 역할을 어떻게 표현할지 부담스러웠다”고 털어놨다.
그가 찾은 방법은 인물을 얄밉게 만들기보다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다. 사회적 갈등과 세대 간 대립이 복잡하게 얽힌 현실에서 기성세대의 전형처럼 보이는 인물을 연기하는 만큼 특정 세대를 부정적으로 각인시키는 일을 경계했다.
“윤주열은 기성세대 어른의 전형인데 이 모습이 그런 어른의 모습을 각인시키는 게 아닐까 싶었다. 좋은 어른도 많은데 제가 이 역할을 하면서 그분들을 고정화시키는 게 아닐까 부담은 있었다. 그런 부담을 상쇄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생각했다.”
유재명이 선택한 방향은 인물을 최대한 귀엽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작품 안에서 최대한 귀엽게, 객관화해서 바라볼 때 동물 같은 느낌을 주고자 했다. 마냥 싫지만은 않게, 이 사람이 말할 때 무섭지 않고 귀엽게 바라보며 그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극 중 자신이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떨어지면 안 되는데’라고 반응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그런 반응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면서 인물을 향한 관객의 감정이 연민으로 바뀌기를 바랐던 의도를 전했다.
고위공무원이나 검사 등 권력자를 자주 연기해 온 유재명은 이번에도 직함보다 인간 자체에 집중했다고 한다. 출제위원장이라는 높은 자리에 있지만 그 역시 평범한 중년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 “사람 사는 것은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어떻게 보면 출제위원장의 위치인데 소시민 아저씨 같다. 욕심쟁이 같은 모습도 있다. 그 와중에도 사람 같은 모습도 보여주고자 했다. 마냥 미워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권위적인 인물에게서도 집에 있는 아버지의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려 한 셈이다.
함께 출연한 이선빈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난 이선빈을 두고 “생각보다 여리다. 소녀 같은 모습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주 어린 나이부터 연예계를 겪으며 세상을 깨고 나가고 싶어 하는 텐션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나이대에 맞는 순수함이 있다”고 덧붙였다. 연극을 많이 해온 배우들 사이에서 이선빈이 느꼈을 부담을 헤아리기도 했다. “실제로 명절에 모인 대가족처럼 다양한 연령대 배우들이 모여서 함께 촬영하고 밥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말에서 현장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전해졌다.
영화가 다루는 입시와 성공의 문제는 유재명 자신의 삶과도 연결된다. 학력고사 세대인 그는 좋은 대학에 진학해 등록금 부담을 줄이고, 졸업 후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성공의 공식처럼 여겨지던 시절을 통과했다. 하지만 연극을 만나면서 부모의 기대와는 다른 길을 택했다.
“저는 학력고사 세대다. 고생한 부모님을 위해 좋은 대학이나 등록금이 저렴한 국립대에 가서 좋은 곳에 취직하는 게 성공이라고 여겼다. 저는 연극을 만나서 부모님의 기대에 못 미쳤다. 죄송한 마음이다.”
그렇다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자녀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유재명은 좋은 대학과 직장에 대한 부모의 바람을 이해하면서도 그것이 성공의 전부는 아니라고 짚었다.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부모님의 바람은 우리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곳에 취직하는 것이다. 영원한 희망과 숙제다. 대한민국이라는 멋있는 나라의 바람이기도 하다. 소박한 부분인 것 같기도 하다. 사회적인 것들이 문제다. 그게 다가 아닌데”라고 말했다. 이어 “저는 저희 아이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다. 우리도 마음대로 살아온 듯이 자신들 마음대로 살지 않을까 싶다. 부모는 좋은 울타리만 되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애니메이션 영화 ‘아가미’ 시사회에서 “요즘 갱년기”라고 털어놓은 이유는 신체 변화만을 뜻하지 않았다. 유재명은 “그런 나이다. 눈도 안 보이고 무릎도 안 좋다. 육체의 피로함이 예전 같지 않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어 “시간이 언제 이렇게 훅 지나갔는지 느낀다. 올 1월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의 흐름과 내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몸의 변화와 함께 작품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졌다는 설명이다.
“좋은 작품을 마음껏 하고 싶다. 예전엔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요즘엔 기회가 많지 않다. 한 편이라도 더 소중하게, 좋은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이가 들어가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무리하게 시술을 받기보다 배우로서 자연스럽게 쌓이는 시간의 흔적을 받아들이고 싶다는 생각도 밝혔다. “사람인지라 노안이라고 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염색도 할 수 있지만 배우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이는 것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관리를 안 하려고 하면 좀 그렇고, 굳이 병원에 가서 시술을 받는 것은 싫어한다”고 말했다.
유재명은 ‘수능 출제의 비밀’이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에게도 닿기를 바란다. 특히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과 부모들이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2 예비 수험생들이 보셨으면 좋겠고 학부모, 교사, 수능 관계자들이 많이 보셨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