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 외할아버지 신영균, "서울대 나온 치과의사였다"...샘킴과 결혼에 들통난 이력
||2026.10.21
||2026.10.21
지난 15일 서울 강동구의 한 시상식장에
검정 드레스 차림의 이재가 들어섰습니다.
팔짱을 낀 사람은 예비 신랑 샘킴이었고요.
이날은 이재 외할아버지 신영균의
아흔아홉 해를 기념하는 백수연 자리였습니다.
이재 샘킴 결혼을 한 달 앞두고
손녀가 신랑감 손을 잡고 인사드린 셈이지요.
벌써 백 살이 다 됐다며 웃으셨다는
어르신 소식에 괜히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 출발이 배우가 아니었어요.
신영균 프로필, 시작은 진료실이었다
신영균은 1928년 황해도 평산 태생입니다.
여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다고 해요.
학창 시절부터 연극을 좋아했지만
연기로는 밥벌이가 어렵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고른 길이 서울대 치과대학.
1955년 졸업 뒤 치과의사가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아내분 이야기입니다.
해군 군의관 시절 만나 결혼한 아내는
남편이 치과의사라서 시집왔지
배우였으면 안 왔을 거라고 했다지요.
그래도 끝내 연기를 하겠다는 남편에게
결국 아내가 졌다고 하니
그 고집이 보통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늦깎이 신인에서 임금 전문 배우로
연극 무대에 섰다가 조긍하 감독 눈에 띄어
1960년 영화 「과부」로 데뷔했습니다.
서른이 넘은 늦깎이 신인이었지요.
2년 만에 「연산군」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
1964년 「빨간 마후라」로는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임금 역을 워낙 많이 해 별명도 붙었고요.
「미워도 다시 한번」 보며 손수건 적신 분,
우리 독자님들 중에도 꽤 계시지요?
출연작이 300편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국회의원, 그리고 500억 원의 환원
1978년 스크린을 떠난 뒤에는
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극장을 사들여 운영한 사업가이기도 했지요.
2010년에는 명보아트홀과
제주 신영영화박물관 등
500억 원 규모를 영화계에 내놓았습니다.
모교 서울대 치의학대학원에도
10억 원을 보탰다고 해요.
꿈을 접지 않고 맡겨두었던 사람
손녀 이재는 올해 「골든」으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품에 안았습니다.
케이팝 좋아한다고 놀림받던 아이였다지요.
이재 외할아버지의 인생을 다시 보니
치과의사 면허는 꿈을 버린 증거가 아니라
꿈을 지켜준 안전망이었던 것 같습니다.
먹고살 길을 먼저 다져 두었기에
서른 넘어서도 무대로 뛰어들 수 있었겠지요.
그렇게 번 돈은 다시 극장과 후배에게,
그 무대 체질은 손녀에게 건너갔습니다.
저는 이재 샘킴 결혼 소식보다
그 백 년의 흐름이 더 오래 남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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