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될수록 외로운 시대…한병철 신간 ‘존중 없는 사회’ 출간
||2026.10.22
||2026.10.22
스마트폰으로 끊임없이 소통하고 소셜미디어에서 일상을 공유하지만, 정작 자신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연결은 늘어나는데 고립은 깊어지는 시대, 철학자 한병철이 그 역설을 ‘존중의 상실’이라는 문제로 풀어낸다.
한병철의 신간 '존중 없는 사회: AI시대, 사회적 위기'가 정창호의 번역으로 간디서원에서 출간됐다. 지난 10월 5일 발행된 이 책은 성과 경쟁과 디지털 문화 속에서 인간에 대한 존중이 어떻게 약화되고, 그 결과 개인의 불안과 공동체의 분열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살핀다.
책이 주목하는 것은 존중마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얻을 수 있는 보상으로 바뀐 현실이다. 저자의 진단에 따르면 현대인은 존재 자체로 인정받기보다 성과와 경제력, 사회적 지위로 평가받는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노력은 끝없는 자기 관리로 이어지고, 자기실현을 추구한다는 믿음 아래 스스로를 소진시킨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느끼는 불안이 자기 자신을 향한 비난으로 돌아오는 구조다.
소셜미디어는 이러한 불안을 일상으로 끌어들인다. 사람들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모습을 전시하며 관심과 반응을 확인한다. 한병철은 이 과정에서 타인을 존중하는 관계가 주목을 얻기 위한 경쟁으로 바뀌는 현상을 비판한다. 인플루언서 역시 ‘좋아요’와 이미지 소비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자신을 상품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책은 디지털 환경의 편리함 뒤에서 인간의 관계와 내면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묻는다.
논의는 개인의 피로와 외로움을 넘어 사회의 위기로 확장된다. 공동체의 신뢰를 뒷받침하던 권위와 삶의 방향을 제시하던 가치가 흔들리면서, 개인은 더 큰 불안과 방향 상실을 경험한다. 저자는 이러한 공백이 포퓰리스트와 독재자의 등장을 자극하고 사회를 극단으로 밀어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존중의 문제를 개인의 예절이나 성품에만 맡겨둘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책이 비관적인 현실 진단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한병철이 제시하는 대안은 타인을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는 공존과 정중한 거리 두기다. 상대의 모든 것을 알아야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일이 언제나 좋은 소통도 아니라는 시각이다.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에서 관계를 다시 시작할 가능성을 찾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존중은 단순히 친절한 행동을 권하는 덕목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게 하는 토대이자, 적대와 혐오 속에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조건이다. 책은 더 많은 성과와 반응을 얻는 방법 대신, 자신과 타인을 소모시키지 않는 관계가 가능한지를 독자에게 질문한다.
짧은 문장에 사유를 압축하는 한병철 특유의 문체도 이어진다. 경구를 연상시키는 서술과 시각적·감각적 표현을 통해 추상적인 철학적 문제를 일상의 경험으로 끌어온다. 한국어판에는 철학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한병철은 디지털 문명과 현대사회의 문제를 탐구해 온 한국 출신의 재독 철학자다. 2025년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공주상 소통·인문학 부문을 수상했다. 재단은 그의 작업이 기술사회의 도전과 인간의 고립을 해석하고, 동서양 철학의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각을 전달해 왔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