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자, "아픈 남편에게 한 부탁..." 그가 한가득 써놓고 떠난 것
||2026.10.26
||2026.10.26
남편은 봉투를 한가득 써놓았습니다.
누군가의 결혼식에 갈 때 쓸 봉투,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쓸 봉투였어요.
아픈 몸으로 펜을 쥔 사람은
배우 김혜자의 남편이었습니다.
아내의 부탁 하나를 들어주려고요.
그 사연이 세상에 알려진 건
남편이 떠나고 25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아픈 남편은 왜 경조사 봉투까지
챙겨두고 떠났던 걸까요?
한자 앞에서 작아지던 국민 엄마
2023년 1월, 〈유 퀴즈 온 더 블럭〉.
남편 이야기가 나오자
김혜자 씨는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김혜자 남편 고(故) 임종찬 씨는
1998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 오래전 일인데도 말이에요.
60년 넘게 연기만 해온 배우지만
집에서는 못하는 게 하나 있었답니다.
바로 봉투에 쓰는 한자였어요.
축의, 부의 같은 글자를
남편은 반듯하게 잘 썼다고 해요.
그래서 그 일은 늘 남편 몫이었습니다.
"당신 없으면 누가 써줘요"
병이 깊어지자 남편은
자기가 없으면 아내가 아무것도
못 할까 봐 걱정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때 아내가 어리광처럼 부탁했어요.
당신 없으면 이건 누가 써주냐고요.
김혜자 씨 스스로도 철없는 말이었다고
웃으며 돌아봤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그 말을
그냥 흘려듣지 않았습니다.
아픈 몸으로 봉투를 한가득 써두었어요.
아내가 오래오래 쓸 수 있도록요.
퇴근길이면 먹고 싶은 걸 묻고,
아내가 찾던 시장 순대를 사러
밤길도 마다 않던 사람이었다고 해요.
봉투도 아마 그 마음이었겠지요.
한 장씩 줄어드는 그리움의 달력
오래 함께한 사람의 빈자리는
큰 기념일보다 혼자 해야 하는
작은 일에서 더 또렷해지는 것 같아요.
김혜자 남편은 아내의 부탁을 받고
슬픔 대신 할 일을 남겨두었습니다.
아내가 남의 기쁨과 슬픔에
빠짐없이 함께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러니 봉투를 꺼낼 때마다
남편의 글씨가 먼저 인사를 건넸을 거예요.
봉투가 한 장씩 줄어들 때마다
그리움은 한 칸씩 늘어났겠지요.
올해 85세가 된 김혜자 씨는
SBS 특집 다큐멘터리로
여전한 안부를 전해왔습니다.
그 곁에는 아마 지금도
남편이 써준 봉투의 기억이
조용히 함께하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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