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아들을 남동생이라고 사람들에 소개하고 호적에 올린 국민 가수
||2026.10.28
||2026.10.28
자신이 낳은 친아들을 ‘아들’이 아닌 ‘남동생’으로 호적에 올리고 오랫동안 모자 관계를 드러내지 못했던 가수가 있다. ‘빙글빙글’, ‘슬픈 인연’ 등으로 1980년대를 대표했던 가수 나미의 이야기다.
나미는 어린 시절부터 미8군 무대 등을 통해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가요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독특한 음색과 세련된 무대 스타일을 앞세운 그는 ‘빙글빙글’, ‘슬픈 인연’, ‘인디언 인형처럼’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당대 최고의 여성 가수 가운데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화려한 전성기 뒤에는 쉽게 밝히기 어려웠던 가족사가 있었다. 나미는 매니저였던 최봉호 씨와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갔고, 두 사람 사이에서는 1984년 첫아들 최정철이 태어났다.
하지만 당시 두 사람은 법적으로 정식 부부가 된 상태가 아니었고, 나미 역시 가수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결국 나미는 최정철을 자신의 아들이 아닌 남동생으로 호적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기준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지만 당시 연예계를 둘러싼 사회적 분위기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여성 연예인의 결혼과 출산은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고, 정상급 가수로 활동하던 나미에게 갑작스러운 출산 공개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었다.
여기에 최봉호 씨와의 관계를 둘러싼 개인적인 사정까지 겹치면서 아들의 존재를 공개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콘텐츠에서는 당시 최봉호 씨의 기존 혼인관계가 정리되지 않았던 점을 이유로 언급하고 있다.
다만 이 내용은 당시 보도 등을 통해 구체적인 경위가 충분히 확인된 것은 아니어서 직접적인 이유로 단정하기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분명한 것은 나미가 최정철을 낳은 뒤 한동안 아들이 아닌 남동생으로 가족관계에 올려놓았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최정철은 어린 시절 친어머니인 나미를 누나로 알고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미 역시 전성기를 보내면서 자신의 친아들을 공개적으로 아들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감춰졌던 가족관계도 제자리를 찾았다. 나미는 1995년 최봉호 씨와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했고, 이후 최정철 역시 나미의 아들로 가족관계를 바로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정철은 이후 어머니의 뒤를 따라 가수의 길을 선택했다. 2002년 그룹 Q.O.Q 멤버로 데뷔했으며 이후 솔로 가수로도 활동했다. 나미는 1990년대 이후 방송 활동을 크게 줄였지만, ‘빙글빙글’, ‘슬픈 인연’ 등 대표곡은 꾸준히 다시 불리며 대중에게 익숙한 노래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