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V90] B필러를 지우고 장인정신을 새기다… 제네시스 GV90가 증명한 ‘퍼스트 무버’의 자격
||2026.10.29
||2026.10.29
신차 공개 현장에서는 이른바 '플래그십 딜레마'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더 넓은 공간을 원하면 차체가 둔해지고, 화려한 디자인을 좇다 보면 구조적 안전성과 타협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특히 배터리 무게만 수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대형 전기차라면 이 딜레마는 뼈아픈 엔지니어링의 한계로 다가온다.
하지만 지난 28일 제네시스의 해법은 명쾌하고 도발적이었다. 타협점을 찾는 대신, "타협의 순서를 뒤집었다"는 허광훈 상무의 말은 제네시스가 더 이상 유럽 럭셔리 브랜드의 '패스트 팔로어'가 아님을 선언하는 것과 같다.
■공간의 자유를 위해 로봇의 관절을 이식하다
콘셉트카에서나 보던 B필러 없는 코치 도어(네오룬 아치 게이트)를 양산차에 온전히 구현한 것은 집념의 결과물이다. 통상 B필러를 없애면 측면 충돌 안전성과 차체 강성이 치명적으로 약해진다. 제네시스는 이 숙제를 풀기 위해 A필러부터 루프까지 2.5m짜리 고강도 스틸 튜브를 밀어 넣고, 도어 내부에는 B필러 역할을 대신할 초고강도 듀얼 스틸 빔을 덧댔다. 그 결과 지붕 위에 14톤(tf)의 무게를 얹어도 버티는, 글로벌 최고 수준의 천장 강도를 확보했다.
놀라운 것은 70kg에 달하는 육중한 리어 도어를 제어하는 방식이다. 간섭 없이 문을 열기 위해 대학교 기구학 교재를 다시 뒤졌다는 연구진은 결국 공작기계와 산업용 로봇에 쓰이는 초정밀 부품 '리니어 모션 가이드'를 자동차 힌지에 이식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완전히 새로운 하드웨어 구조를 만들고, 도어가 열리는 순간 주변 장애물을 감지하는 레이더 센서를 크롬 가니시 내부에 미세한 균열(크롬 크랙 기술)을 내어 숨기는 디테일은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가벼운 3톤’을 만드는 섀시 마법과 정숙성
무거운 전기차의 숙명인 NVH(소음·진동)와 승차감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플래그십 전용 'eMP 플랫폼'은 차체의 72%를 알루미늄으로 채워 혹독한 다이어트를 감행했다. 특히 하중이 쏠리는 서스펜션 마운트 부위는 접합선이 없는 '할로우 캐스팅' 주조 방식을 써서 뼈대 자체의 강성을 극강으로 끌어올렸다.
전기차 특유의 고요함을 위해 모터 구동축의 설계부터 뜯어고쳤다. 고속 카메라와 레이저로 모터의 미세한 축 거동까지 분석해 분리형 구조로 바꾸고, 반대 위상의 전류를 쏴서 모터 소음을 원천적으로 40%나 줄였다는 대목에서는 NVH에 대한 강박마저 엿보인다. 이중 차음 필름과 모든 유리에 적용된 차음 유리를 통해 G90 세단을 뛰어넘는 정숙성을 확보했다는 점은 GV90의 정체성이 철저히 '쇼퍼드리븐(운전기사가 몰고 오너가 뒷좌석에 타는 차)'의 영역까지 커버함을 보여준다.
■기술로 빚어낸 현대적 달항아리
럭셔리의 화룡점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디테일이다. 이음매 없는 '달항아리' 디자인을 위해 헤드램프에 차체 도장을 입힌 뒤 레이저로 빛이 나오는 곳만 깎아내는 '컷리스(Cut-less)' 공법을 적용했다. 또한 천연 나무와 돌의 무늬를 맞추기 위해 디자이너가 실물 견본집(마스터 북)을 만들어 생산 라인에 적용했다. 캐시미어 원단 하나를 고를 때도 승하차 마찰을 계산해 200종의 샘플을 테스트했다.
과거의 럭셔리가 장인의 거친 손끝에서 탄생했다면, 제네시스가 GV90를 통해 보여준 럭셔리는 나노 단위의 정밀한 설계와 0.08초 만에 터지는 루프 에어백 같은 첨단 기술의 집약체다. '엔지니어링은 타협의 기술'이라는 업계의 오랜 금언을 깨부수고, 양보할 수 없는 절대 기준을 먼저 세운 제네시스. GV90는 이제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을 뒤흔들 준비를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