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에 정치적 보복 당해 풍비박산 당하고 해외 추방된 방송인 가족
||2026.10.30
||2026.10.30
의사 겸 사업가 여에스더가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 겪었던 드라마틱한 가족사를 공개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MBN 예능 프로그램 ‘신과 한판’에 출연한 여에스더는 어린 시절 대구에서 무려 800평 규모의 대궐 같은 저택에 살았던 부유한 환경을 털어놓았다.
당시 그의 조부는 대구일보를 사주로 운영했으며, 삼성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과 함께 제일모직 사업을 태동시킬 정도로 막강한 재력을 자랑하던 대구 지역의 유력 인사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대구를 방문할 때마다 자택을 찾을 정도로 정권 핵심부와의 친분도 두터웠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가문의 영광은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송두리째 뒤흔들렸다.
당시 신민당 후보로 출마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거 홍보물을 대구 지역 인쇄소들이 정권의 눈치를 보며 인쇄해 주지 않자, 대구일보 기획실장으로 재직 중이던 여에스더의 부친이 결단을 내렸다. 친구들과 함께 밤새 윤전기를 돌려 야당 후보의 선거 홍보물을 전격 제작한 것이다.
대가와 파장은 가혹했다. 홍보물 인쇄 사실이 발각된 직후 부친은 중앙정보부로 긴급 연행됐다. 평소 친분을 믿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청와대를 찾았던 조부 역시 문전박대를 당하며 냉혹한 권력의 칼날을 마주해야 했다.
사건 이후 가문이 일궈놓은 사업체 대부분은 자산관리공사로 강제 환수되며 공중분해됐다. 대구일보는 끝내 폐간 조치를 피하지 못했고,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수십 명의 기자들이 여에스더의 자택으로 몰려와 퇴직금 지급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국내에서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워진 가족들은 결국 1970년대 일본으로 건너가 약 3년 동안 낯선 타국살이를 이어가야 했다. 800평 대저택의 풍요로움은 신기루처럼 사라졌지만, 여에스더는 당시의 망명에 가까웠던 일본 생활을 뜻밖의 기억으로 회상했다. “오히려 온전히 가족끼리만 살을 맞대고 지낼 수 있었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거대한 저택과 수많은 고용인, 바쁜 가업 탓에 늘 거리감이 존재했던 가족들이 타국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비로소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가문의 막대한 부는 사라졌지만, 그 결핍의 시간 속에서 가족이라는 끈끈한 안식처를 되찾았다는 그의 고백은 시청자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