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관계자 한국전쟁 상이 용사인 故 최동원 아버지에게 “병X”이라 욕해
||2026.10.30
||2026.10.30
과거 프로야구 선수 최동원은 롯데 구단으로부터 계약금 2900만원, 지금으로 치면 꽤 큰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금전적인 피해를 겪었다. 이러한 갈등으로 인해 최동원은 구단에 대한 불신을 품게 되었으며 선수로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럼에도 그는 오직 팬들을 위해 뛰었다. 1984년 코리안 시리즈에서 무려 7경기 중 5경기에 출전하여 40이닝 동안 공을 던지며 팀을 코리안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전년도에 기록적인 혹사에 시달린 이후 진행된 연봉 협상 과정이 순탄치 않자 구단 고위 관계자가 최동원의 아버지를 “병X”이라며 모욕적인 언사까지 하기도 했다. 당시 최동원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상이용사로 한쪽 다리가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기에 모멸감은 더욱 컸다. 결국 극도의 분노와 모멸감을 느낀 최동원은 은퇴 선언이라는 초강수를 두며 구단에 강하게 반발했다.
최동원이 팀을 이탈한 상태에서 롯데가 해태에 패배하자 일부 성난 부산 시민들이 최동원의 집에 찾아가 유리창을 깨는 등 난동을 부렸다. 그 후 최동원은 오직 후배 선수들의 권익과 처우 개선만을 생각하며 선수협 결성을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알게 된 롯데 구단은 최동원을 삼성으로 일방적으로 보내버리는 보복성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구단의 부당한 조치 이후 부산 시민들조차 진실을 알지 못한 채 오히려 그를 “빨갱이”라고 비난하며 손가락질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졌다. 롯데는 최동원이 투병 끝에 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철저하게 그를 외면하고 언급조차 꺼리는 태도를 유지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고위 임직원급의 대우로 장례를 지원해 준 곳은 롯데가 아니라 최동원이 코치로 있었던 한화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경남 권에 NC 구단이 새롭게 창단되고 최동원이 쓸쓸히 사망하자 부산 팬들의 롯데구단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여론이 들끓고 팬들의 이탈을 뒤늦게 의식한 롯데는 마지못해 그의 등번호를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며 수습에 나섰다. 구단의 이 같은 뒤늦은 조치는 과거에 저지른 과오를 덮기 위한 보여주기식 행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로 손꼽히는 선수를 향한 구단의 냉혹하고 계산적인 처사가 하나 둘 드러나자 많은 야구 팬들에게 큰 충격을 받았다. 프로야구 선수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고 권리를 묵살했던 당시 구단들의 전근대적인 운영 방식을 개선하고자 노력했던 그였지만 정작 성적을 위해 선수를 소모품처럼 다룬 자신의 구단에서 토사구팽한 사건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았다.
구단의 부당한 압박과, 대중들의 무지한 오해, 보복성 트레이드는 레전드 최동원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구단 경영진의 오만함과 비인간적인 행위는 당시에는 드러나지 않았다. 최동원은 수 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받고 늘 배신자 취급을 받았다. 스포츠 역사의 영웅으로 추대받아야 마땅한 레전드는 혹독한 투병 끝에 결국 암으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이제야 밝혀진 최동원이 남긴 위대한 업적과 희생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한국 야구 발전에 결정적인 초석이 되었다는 점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늦게나마 명예가 회복되기는 했으나 구단과 대중들이 보여준 과거의 행태가 지닌 문제점은 결코 가볍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