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김민석, 끝내 빈소로…슬픈 소식
||2026.10.30
||2026.10.30
한때 선거에서 맞붙었던 두 사람이 수십 년의 세월을 지나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됐다. 정치적 경쟁자로 처음 만났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남은 기억은 승패가 아닌 따뜻한 배려였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배우 최불암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빈소를 찾아 과거의 특별한 인연을 회상했다.
김 대표는 30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된 고(故) 최불암의 빈소를 방문했다. 고인의 영정 앞에서 조의를 표하고 유가족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 조문을 마친 뒤에는 취재진과 만나 최불암을 처음 만났던 시절부터 이어진 기억을 털어놨다.
김 대표와 최불암의 인연은 정치 무대에서 시작됐다. 두 사람은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영등포을 지역구를 놓고 경쟁한 사이였다. 당시 김 대표는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최불암은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으며 선거에서는 김 대표가 승리했다.
그러나 김 대표가 기억하는 최불암은 치열하게 맞섰던 상대 후보의 모습과는 달랐다. 그는 “국민들께는 큰 배우시지만 저에게는 또 특별한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라며 고인과의 관계를 소개했다. 이어 “제가 처음 국회의원이 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 선거의 상대로 만났던 분이시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선거를 치르는 동안에도 최불암의 태도는 김 대표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그런데 그 선거와 경쟁 과정 내내 한 번도 경쟁하는 상대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늘 따뜻하게 저한테 대해주셨다”라고 회상했다. 승패를 다투는 상황에서도 상대를 존중했던 고인의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정치적 경쟁이 끝난 뒤에도 두 사람의 인연은 이어졌다. 김 대표는 “그 이후에도 종종 뵐 때마다 늘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제게는 사실 한 번이라도 경쟁했던 상대라기보다는 따뜻한 선배님 같은 그런 느낌으로 남아 있는 분이었다”라고 말했다. 선거에서의 만남이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적인 존경과 감사의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다.
김 대표는 고인의 마지막 길을 찾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아쉬운 마음도 전했다. 그는 “그런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오늘 특별히 더 아쉽고 또 감사하고 많이 아쉽다”라고 밝혔다. 이어 “국보급 연기자라는 표현도 있지만 넉넉한 인격에 있어서도 아주 국민적인 표본이 되셨다고 생각한다”라며 배우로서의 업적뿐 아니라 고인의 인품을 높이 평가했다.
최불암은 지난 29일 오후 10시 30분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서울 강서구의 한 병원에서 건강 악화로 치료를 받아오던 중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30일 오전 10시부터 일반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고인의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5일간 거행된다.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았으며 이수성·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이 장례위원으로 참여한다. 발인은 11월 2일이며, 이후 여의도성당에서 고인을 위한 장례 미사가 열릴 예정이다.
1959년 연극 ‘햄릿’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한 최불암은 1967년 KBS 특채 탤런트로 선발되면서 방송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MBC ‘수사반장’에서 강직한 수사관으로 사랑받았고, 장수 드라마 ‘전원일기’에서는 가족의 중심을 지키는 아버지 역할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오랜 연기 생활을 통해 얻은 ‘국민 아버지’라는 별칭은 그를 상징하는 표현이 됐다.
2011년부터는 KBS 1TV ‘한국인의 밥상’ 진행자로 전국 곳곳을 누비며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소개했다. 2025년 프로그램에서 하차했으며 올해 3월 건강 이상설이 제기됐을 당시에는 회복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5월에는 MBC 다큐멘터리 ‘파하, 최불암입니다’가 공개되기도 했다.
최불암은 1969년 동료 배우 김민자와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평생 연기와 사회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과 인연을 맺었던 만큼 그의 별세 이후 각계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김 대표에게도 고인은 선거 결과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더 오래 기억되는 인물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