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불암이 얼굴 기억 못한다는 아버지…알고보니 韓 역사에 위대한 인물
||2026.10.31
||2026.10.31
반세기 넘게 대한민국 안방극장을 지키며 정의와 온기의 표상으로 군림했던 원로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대중의 푸근한 버팀목이자 참된 어른으로 헌신해 온 고인이지만, 정작 그의 내면을 지탱한 올곧은 선비 정신과 시대적 사명감의 배후에는 유년 시절 가슴에 묻어야 했던 부친의 묵직한 유산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고인의 부친인 고(故) 최철(崔鐵) 선생은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정국의 걸출한 언론·문화인이었다. 최철 선생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 등지를 오가며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해방 이후에는 만주 등지에 머물던 교포들의 귀국을 돕는 데 앞장섰다. 귀국 후에는 인천에서 격동기 지식인의 사명을 다하고자 언론지 ‘인천일보’를 직접 창간해 주필을 맡았으며, 영화 제작사 ‘건설영화사’를 설립해 문화 구국 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그러나 새로운 조국 건설에 온몸을 던지던 선생은 과로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고인이 불과 여덟 살 되던 해 갑작스럽게 영면했다. 비록 함께한 시간은 짧아 얼굴조차 희미했으나, 부친이 남긴 민족을 향한 헌신과 불의에 굴하지 않는 강직한 기개는 소년 최불암의 영혼에 깊은 나침반으로 각인됐다.
일찍 부친을 여읜 뒤, 홀로 된 어머니는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당대 문인과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던 선술집 ‘은성주점’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렸다. 시인 김수영, 박인환, 소설가 이봉구 등 낭만과 고뇌를 나누던 예술가들의 어깨너머로 문학과 예술을 체득한 고인은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거쳐 1967년 KBS 6기 공채 탤런트로 방송계에 첫발을 디뎠다.
아버지의 꼿꼿한 피를 물려받은 그의 연기 인생은 언제나 정의와 민초들의 삶을 향해 있었다. 대한민국 수사 드라마의 효시인 MBC ‘수사반장’에서는 부패와 타협하지 않고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박 반장으로 분해 시대의 정의를 대변했고, 22년간 방영된 ‘전원일기’에서는 흙냄새 속에서 가족과 이웃을 묵묵히 품어내는 김 회장 역을 맡아 한국적 아버지의 거대한 원형을 확립했다. 브라운관 속 그의 눈빛에는 늘 부친에게서 이어받은 사회적 책임감과 깊은 휴머니즘이 서려 있었다.
그의 행보는 현실 정치로도 이어졌다. 1992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권유로 통일국민당 전국구 의원으로 제14대 국회에 입성했던 고인은, 1996년 제15대 총선 당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한 서울 영등포을에서 32세 청년이던 김민석 후보(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석패한 뒤 미련 없이 정계를 떠났다. 당시 패배를 담담히 인정하며 청년 경쟁자에게 “국보급 정치인이 되어달라”고 건넨 덕담은 지사(志士) 집안의 후손다운 의연한 품격을 보여준 일화로 남아 있다.
이후 고인은 2011년부터 14년간 KBS 1TV ‘한국인의 밥상’을 이끌며 서민들의 밥상에 얽힌 애환을 나눴고, 1980년대부터 수십 년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으로 활동하며 결손가정과 소외된 아이들을 품었다. 어린 시절 부친의 빈자리로 겪어야 했던 결핍의 아픔을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지키는 사랑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생전 남긴 뜻에 따라 고인의 마지막 길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엄수된다. 특유의 호탕한 “파하~” 웃음 뒤에 독립운동가 부친의 꼿꼿한 지조와 한없는 인간애를 품고 살았던 ‘시대의 거목’ 최불암. 그가 남긴 87년의 궤적은 한국 현대 문화사의 거대한 축복이자 결코 잊히지 않을 영원한 유산으로 남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