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자리트 중장갑보병수송차
||2017.08.10
||2017.08.10

개발 배경
주변의 아랍국가 거의 전부를 상대로 기적의 신승을 수 차례 거둔 이스라엘은 3차, 4차 중동전을 거치며 대량의 적 장비를 나포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 Israel Defense Forces)은 전쟁 중 노획한 수백 대의 이집트군 T-54와 T-55 상당수를 개조해 이스라엘군의 환경에 맞는 티란(Tiran)-4와 티란-5을 만들어냈다. 이는 특히 1967년 3차 중동전쟁, 통칭 ‘6일 전쟁’을 겪으면서 기갑 자산의 부족으로 고생한 경험을 반영한 결과였다.
이스라엘은 우군 환경에 맞는 전차를 만들기 위해 노획한 T-54와 T-55의 내부를 재설계하고, T-54를 개조한 티란-4에는 100mm 주포를, T-55를 개조한 티란-5에는 105mm 주포를 장착했다. 하지만 현대 전장에서 사용하기에는 티란 전차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T-54와 T-55의 개조를 중단했다. 완성된 티란은 대부분 예비군을 위한 예비 차량으로 비축했고, 나머지 손대지 않은 T-54와 T-55 노획 차량은 무기고에서 그대로 잠자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이스라엘이 다시 T-54와 T-55를 이용한 중장갑보병수송차(HAPC, Heavy Armored Personnel Carrier)의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0년대부터 시가전 양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하면서였다. 기동하기에 협소한 공간에서 적국이나 테러단체들이 휴대용 대전차 로켓(RPG, Rocket-Propelled Grenade) 등을 사용해 장갑차량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M-113 등 기존의 장갑차로는 방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알루미늄 장갑을 채택한 M-113은 총알이나 포탄 파편 정도를 방어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가벼워 도강(渡江)이 가능하다는 장점은 있었으나, RPG나 대전차 유도 미사일에는 그대로 관통 당한다는 단점을 보였다. ‘젤다(Zelda)’라는 별명으로 불린 M113을 미군으로부터 총 6,000대 공여 받았으나, 1973년 4차 중동전(‘욤 키푸르’ 전쟁) 당시 상당수가 처참하게 격파 당하는 비운을 겪었다.

이에 이스라엘은 세르비아가 운용하던 VIU-55 문자(Munja)나 러시아군의 BMTP에서 힌트를 얻어 방어력에 중점을 둔 보병수송차를 개발하기로 했으며, 1986년부터 이스라엘 병기단(Israel Ordnance Corps)이 개발에 착수하여 1988년 시제 차량이 나왔다. 이스라엘 병기단은 T-54와 T-55의 포탑을 제거하고 상부 차체를 완전히 드러낸 뒤 엔진 요동대(搖動臺), 서스펜션 베어링, 전기 배선을 새로 깔았다.
하지만 기존 T-54와 T-55의 가장 큰 문제는 내부 공간이 심각하게 좁았다는 점인데, 이는 소련군이 징집병들을 체격 기준으로 세워 하위 5%의 인원을 전차병으로 배치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엔진보다 작고 강력한 540마력 엔진을 차체 후방 좌측 코너에 설치하고 내부 공간을 처음부터 다시 배열하면서 중앙에 병력 탑승 공간을 마련했다. 그리고 차량 우측에 출입구를 냈고, 차량 후미로 통하는 작은 통로 공간을 확보해 차량 뒷면에 클램셸(clam-shell) 방식의 비상탈출구를 냈다. 차량 중앙에 병력 탑승을 위한 큰 공간을 마련하면서 총 7명의 완전 무장한 병력이 탑승할 수 있게 되었으며, 운전수, 기관총 사수와 전차장이 탑승할 수 있는 공간은 차량 전방부에 별도로 분리했으며, 운전수 쪽 해치에는 전면부를 방호한 잠망경을 설치했다. 또한 화생방전에 대비해 화생방 방호 능력을 갖추고 야시경을 기본사양으로 채택해 야간에도 운용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이렇게 등장한 ‘아크자리트(Achzarit)’(히브리어로 ‘잔인함’의 여성형)를 면밀히 시험 평가한 후 실전 배치 결정을 내렸으며, 총 250대의 차량이 양산에 들어가 1987년 시제 차량이 출고되었다. 이스라엘 방위군은 1년간 면밀히 시험 운행을 한 후 1988년부터 아크자리트를 실전 배치하기 시작했으며, 주로 보병의 생존성이 극대화되어야 하는 전장 지역에 전개해왔다.
특징
아크자리트는 전 세계를 작전지역으로 삼는 미군과 달리 국지전이 분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군의 교리 자체도 자국 영토 방어 중심인 이스라엘 방위군의 특성에 맞는 전형적인 ‘이스라엘형’ 장갑차다. 즉, 제한적인 공간에서의 기동이 많으며 주요 중장비의 원거리 공수가 필요 없는 특성에 맞춘 중장갑보병수송차로, 주변 적국에 비해 인구가 적어 병력 생존성이 우선인 이스라엘의 방침을 살린 장갑차다. 현재 HAPC를 운용 중인 국가는 전 세계에서 이스라엘뿐이다.
아크자리트 Mk. I은 디트로이트(Detroit)의 8기통 수랭식 디젤 연료 방식의 650마력 엔진을 장착했으며, 이중 타이어를 씌운 차륜을 5개 달았고, 주행 스프로킷(sprocket)은 뒤편에, 유도륜은 앞쪽에 설치했다. 이들 차륜은 측면 스커트 장갑으로 보호되어 있으나, 전륜은 대부분 노출되어 있다. 아크자리트는 현대전 양상에 맞춰 차량 외부에 반응장갑을 설치했으며, 차량 상부에 7.62mm M240 중기관총 3정을 설치했다. 특히 이 중 하나는 라파엘(Rafael Advanced Defense Systems) 사에서 개발한 원격 무기거치대(OWS, Overhead Weapons Station)와 연동되어 있어 차량 내에서 사격이 가능하다.
일부 아크자리트 차량은 Mk. II 사양으로 업그레이드가 실시되어 7.62mm 대신 12.7mm 중기관총으로 교체되었고, 원격 무기거치대도 삼손 원격조종 무기거치대[Samson Remote Controlled Weapon Station: 이스라엘 국내 제조명 ‘카틀라니트(Katlanit)’]로 대체시켰다. 엔진 역시 기존의 650마력 엔진에서 디트로이트제 8V-92 TA 850마력 엔진으로 향상되었다. Mk. II의 후기 모델은 전차장 석에 방탄유리창을 달아 전차장이 밖으로 몸을 노출시키지 않고 주변을 관측할 수 있도록 했다.

운용 현황
아크자리트는 2004년 팔레스타인이 감행한 두 차례 테러로 M-113에 탑승 중이던 11명의 이스라엘 병사가 살해당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단행된 레인보우 작전(Operation Rainbow)에 투입되어 라파(Rafah) 포위전에 참가했다. 또한 2008~2009년 가자(Gaza) 지역에서 발생한 가자 겨울 전쟁[캐스트 리드 작전(Operation Cast Lead)] 때에도 투입되었는데, 하마스(Hamas) 반군이 도심지 내에서 RPG로 공격을 감행하자 장갑이 얇은 M-113은 그대로 관통 당해 피해가 커진 반면, 아크자리트 중장갑보병수송차는 튼튼한 방호력으로 우군 피해를 경감시킬 수 있었다.
현재 운용 중인 아크자리트의 대부분은 이스라엘 방위군의 강습상륙부대인 ‘기바티(Givati)’ 여단에 배치되어 있다. 현재까지 200대 가량이 양산되었다.

파생형
● 아크자리트 Mk. I: 1988년부터 양산된 기본형. 디트로이트(Detroit) 사의 650마력 8V-71 TTA 디젤 엔진이 설치되었다.

● 아크자리트 Mk. II: 엔진을 디트로이트제 850마력 엔진으로 교체한 형상으로, 출력 대비 중량이 높아지고 성능이 향상되었다.

● 아크자리트 지휘차: 아크자리트 중장갑보병수송차의 지휘관용 형상. 기본적인 사양은 아크자리트 중장갑보병수송차와 동일하나, 효과적인 전장 지휘를 위해 통신장비를 보강했다.
제원
- 제조사: 이스라엘 병기단(Israel Ordnance Corps) / NIMDA
- 승무원: 3명 / 무장 병력 7명 탑승 가능
- 중량: 44톤
- 전장: 6.2m
- 전폭: 3.6m
- 전고: 2m
- 장갑 두께: 200mm
- 최고속도: 55 Km/h(도로 주행 시)
- 항속거리: 약 600km
- 엔진: 디트로이트 650마력 8V-71 TTA 디젤 엔진 (Mk. I) / 디트로이트 850마력 8V-92 TA 엔진
- 무장: 7.62 mm 중기관총x2, 7.62mm 라파엘 OWS(Overhead Weapon Station) 원격식 기관총x1
- 서스펜션: 토션 바(Torsion Bar)
- 등판력: 60%
- 경사각: 40%
- 도강 수심: 1.4m
- 도강 한계: 4m(도강 장비 사용 시)
- 참호 극복 한계: 2.7m
- 수직 등판 한계: 0.8m
- 대당 가격: 약 750,000(APC 사양)~1,200,000달러(라파엘 OWS 원격조종식 기관총 설치 사양)

저자 소개
윤상용 | 군사 칼럼니스트
예비역 대위로 현재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머서스버그 아카데미(Mercersburg Academy) 및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육군 통역사관 2기로 임관하여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에서 군사령관 전속 통역장교로 근무했으며, 미 육군성에서 수여하는 육군근무유공훈장(Army Achievement Medal)을 수훈했다. 주간 경제지인 《이코노믹 리뷰》에 칼럼 ‘밀리터리 노트’를 연재 중이며, 역서로는 『명장의 코드』, 『영화 속의 국제정치』(공역), 『아메리칸 스나이퍼』(공역)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