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지박령
||2024.04.20
||2024.04.20
어느 날이었다.
최교수가 헐레벌떡 구선을 찾아왔다.
"스님, 나 좀 도와 주세요."
"무슨 일입니까?"
"제가 아는 사람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답니다."
"예? 어떤 분인데요?"
"저하고는 아주 절친한 분인데 사고를 당하고도
오히려 가해자가 될 입장에 있답니다."
"아니, 어쩌다가?"
"사실 규명을 해야 하는데 스님이 좀 도와주세요."
내용인즉 전라도 광주에 사는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경찰 조사결과 그 사람이 가해자로 판명되어 보험금도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상대방과 경찰이 죽은 사람이 잘못했다고 우기지만
최교수의 생각엔 그 사람 잘못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교수는 구선에게 도움을 청했다.
구선이 어떤 장소에 가면 그 장소에서 일어났던 일을
읽는 재주가 있으니 그 현장을 함께 답사해 보자고 한 것이다.
구선이 갖고 있는 그런 능력은 수의식의 일종인데
장소가 갖고 있는 잔재 사념을 읽음으로써
그 장소에서 있었던 일을 알 수 있는 방법이었다.

사건 현장은 광주에서 나주로 뻗어 있는 4차선 도로였다.
그런데 그 장소는 사고가 나서 해마다 몇 명씩 죽어나가는 곳이었다.
사건 현장에 가서 섰더니 그 자리에서 죽은 영혼들이
그 곳에 다 모여 있었다.
머리가 깨어지고, 이마가 문드러지고,
팔이 떨어져 나가고, 다리가 잘린 영혼들의 형상이 끔찍했다.
그 영혼들과 얘기는 할 수 없었으나 눈으로는 다 보였다.
구선은 눈쌀을 찌푸리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구선의 표정을 살피던 최교수가 물었다.
"스님, 왜 그러세요?"
"이건 예삿일이 아닙니다."
"예?"
"이 자리에서는 사람이 계속 죽어나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자리가 그냥 도로가 아니고 옛날 이 자리에 뭐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도로가 나면서 그 자리가
헐린 모양인데, 그 자리에 살던 신들이 아직도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와 같은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차를 타고 이 곳을 지날 때는 그 사람한테 딱 붙어서
정신을 잃게 만들죠."
"그 정신이 어떤 상탠지 아세요?"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정신이 혼미한 상태이고,
도박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성격을 가진 귀신인데,
그 귀신이 자기와 같은 성격, 같은 습성을 가진 사람이
이 길을 지나가면 그 사람한테 딱 붙어서 사고가 나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술을 먹고 여자나 도박을
생각하면서 지나가면 딱 거기에 걸려서 죽게 되는 겁니다."
"세상에 그런 일도 있습니까?"
최교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최교수가 구선에게 죽은 영가를 천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구선은 사고 현장에 제물을 차려 놓고
그 자리에 있는 영혼들을 일으켜 세웠다.
"이 자리는 너희들이 있을 장소가 아니다.
이 자리는 사람들이 통행하는 장소다.
너희들은 길 가다 죽은 영혼들이다.
너희들이 잘못된 습관과 습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던 귀신한테 씌워서 죽었는데 죽어서까지 그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너희들과 같은 습성을 가진 사람이 지나가면 단체로 덮어 씌워서 그 사람을 죽이고 있다.
그렇게 해서 너희들과 같은 영혼들이 계속 이 자리에
모여들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여기가 지옥이 된다.
너희들은 지금 지옥을 만들고 있다."
구선이 이렇게 말을 하자 그 자리에 있던 영가 중
가장 형체가 온전한 영가가 구선에게 물었다.
"어떡하면 이와 같은 지옥고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생전에 가졌던 습성을 버려라. 즉 술 먹는 습성,
도박하는 습성, 여자 탐하는 습성을 버려라."
"어떻게 버립니까?"
"그냥은 버려지지 않는다. 마음에 정심을 세우고 그런
습성이 일어나면 그 정심으로 모든 습성을 돌려서 놓아야 한다."
구선은 길바닥에 앉아서 계속 얘기를 했다.
"너희들은 여기서 벗어나고 싶으냐?
아니면 여기에서 계속 지옥고를 받고 싶으냐?"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러면 나를 따라오너라."
구선은 요령을 딸랑딸랑 흔들면서 걸음을 옮겼다.
"마음이 괴롭고 마음에 집착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지옥이다. 마음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죽어서도 그
습성을 갖고 다니면 그게 바로 지옥이다.
너를 잃어버리는 것이 지옥이요,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는 것이 지옥이다.
세상 천지만물은 유유상종하나니
내가 못된 습성과 못된 의식을 갖고 있으면
만나는 생명이 다 못된 습성과 못된 의식을 갖고 있게 된다.
그런 생명들이 어우러져 있으니 이것이 바로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냐? 마음의 모든 집착을 다스려야 한다.
마음의 집착을 다스리려면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척도를 자기 안에 갖추어야 한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오로지 지극하게 관세음보살을 외면 어느 때에
이르러서 자기 마음의 한 구석에서 고요한 마음이 일어난다.
그런 고요한 마음이 일어날 때 자기에게 있는 잘못된
의식들을 그 마음의 고요함으로 돌려라.
돌리고 돌리고 하다보면 거기에서 그 모든 습성이
제도된다. 그러할 때 너희들은 지옥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생전에 지었던 모든 습성을,
죽음에 이르러서는 따르지 말아라.
그리하면 반드시 불세계에 이를지니
번뇌가 곧 보리가 됨이로다.
구선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