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희대 대법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이혼한 부부에게 혼인무효 처분을 인정하지 않는 혼인무효소송에 대한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아있다. 2024.05.23. 사진=뉴시스
투데이코리아=이기봉 기자 | 이미 이혼했더라도 당사자 간에 합의가 없는 결혼 등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혼인을 무효로 할 수 있다는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날(23일) A씨가 전남편 B씨를 상대로 낸 혼인 무효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전원일치 의견으로 원심의 각하 판결을 파기하고 서울가정법원(1심)으로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해당 소송은 1심부터 혼인 무효 사유가 있는지 다시 심리에 들어가게 된다.
앞서 A씨는 지난 2001년 B씨와 결혼했다가 2년 만에 B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냈고 2004년 10월 이혼 신고를 마쳤다.
이후 2019년 A씨는 당시 ‘극도의 혼란과 불안, 강박 상태에서 혼인에 관한 실질적 합의 없이 혼인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혼인 무효 소송과 ‘혼인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정신상태에서 B의 강박으로 혼인신고를 했다’며 혼인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현행 민법 815조에 따르면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거나 근친혼일 경우에는 혼인을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1심과 2심에서는 합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대법원 판례에 따라 소송을 심리하지 않고 각하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1984년 이혼한 부부의 혼인을 무효로 돌린다고 하더라도 법률상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판결문에는 “혼인 관계가 이미 이혼 신고에 의해 해소됐다면 혼인 무효 확인은 과거 법률관계 확인으로서 확인의 이익이 없다”며 “단순히 여성이 혼인했다가 이혼한 것처럼 호적상 기재되어 있어 불명예스럽다는 사유만으로는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법원은 혼인 무효 소송을 통해 혼인으로 인해 형성된 법률관계와 관련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이익이 있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이혼으로 혼인관계가 해소된 이후라도 혼인으로 형성된 수많은 법률관계와 관련된 분쟁을 해결하는 유효하고 적절한 수단일 수 있어 혼인 무효 확인을 구할 이익이 있다”며 “원심판결에는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무효인 혼인은 처음부터 혼인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지만, 이혼은 혼인관계가 해소돼도 이혼 전에 혼인을 전제로 발생한 법률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혼인이 무효라면 민법 809조 2항의 인척간의 혼인금지, 형법 328조 1항에 규정된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지 않아 이혼 후에도 혼인관계가 무효임을 확인할 실익이 존재한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혼인 전력이 잘못 기재된 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을 위한 증빙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혼인 무효 확인의 소가 제기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혼인무효 판결을 받은 당사자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107조 등이 정한 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을 요구할 수 있다”며 “이혼으로 혼인관계가 해소됐을 때 무효 확인을 구하는 소는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요구에 대한 객관적 증빙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가족관계등록부의 잘못된 기재가 단순한 불명예, 간접적·사실상 불이익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혼인 무효의 소에서 확인의 이익을 부정한다면, 혼인무효 사유의 존부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구할 방법을 미리 막아버린다”며 “이는 국민이 온전히 권리구제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