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면 ‘쇄신’ 실패하면 ‘역주행’…OB에 반도체 명운 건 삼성
||2024.05.27
||2024.05.27
반도체 사업 위기에 직면한 삼성전자가 5월 21일 DS부문장 전격 교체를 발표했다. 전임자보다 더 젊은 인물을 선임했던 과거와 달리 1960년생 ‘올드보이(OB)’ 전영현(64) 부회장이 위촉됐다. 학계 및 업계 일각에서는 인공지능(AI) 시대 변화의 중심에 있는 반도체 사업에서 삼성전자가 속도감 있는 대응과 과감한 선택에서 멀어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 DS부문은 그동안 ‘세대교체’ 방향성을 유지해왔다. 2017년 10월 권오현 부회장의 후임으로 7년 젊은 김기남 당시 반도체 총괄사장이 DS부문장에 부임했고, 이보다 5년 젊은 경계현 사장이 2021년 12월에 DS부문장 자리에 올랐다. 조직을 쇄신해 활력을 주는 동시에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 더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회사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삼성전자는 전영현 부회장의 DS부문장 선임 관련 “불확실한 글로벌 경영 환경하에서 대내외 분위기를 일신해 반도체의 미래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다”라며 “메모리 반도체와 배터리 사업에서 축적된 풍부한 경영노하우를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AI 반도체 핵심 부품인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밀려 추격에 급급하다. 더 밀려나면 SK하이닉스에 HBM 주도권을 완전히 넘겨줄 수 있다는 평가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이건희 회장의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처럼 뼈를 깎는 조직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세대교체 흐름에 역행한 이번 인사는 삼성전자가 보이는 간절함과 달리 더 보수적인 경영 기조로 나아갈 수 있다는 우려를 남긴다. 기존 DS부문의 ‘영보이(YB)’ 입장에선 제대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는 아쉬움이 생길 수 있다. 이런 기조가 글로벌 인재 영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 삼성전자는 매출 비중이 미미했던 HBM 개발 예산을 삭감하며 개발에 소홀했다. 당시 HBM을 개발하던 연구 인력 상당 수는 SK하이닉스로 이직을 택했다. 미래를 위한 선택 보다는 눈앞의 이익을 우선한 당시 DS부문장의 결정적 실책으로 꼽힌다. 미래 경쟁력 확보에서 연륜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사례다.
전문가들은 과거 영광을 재현하고픈 삼성전자가 느슨한 조직 문화를 바로 잡기 위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본다. 다만 이런 의지가 미래 준비와 변화의 흐름에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는 시선에도 동의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재용 회장 체제 이후 사법리스크를 겪으면서 루즈해진 조직 기강을 바로잡고, 삼성 반도체만이 보유했던 조직 문화를 재건할 적임자로 전영현 부회장을 소환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을 대체할 수 있는 신진 임원도 마땅치 않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다른 측면에선 반도체 산업 환경이 급격히 바뀌는 가운데 삼성 반도체 조직이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며 “삼성이 의도한 만큼 타이트한 조직으로 재정비를 이룬다면, 세대교체 기조로 빠르게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