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한국이 유인 미션과 우주정거장 건설을 추진해야 하는 4가지 이유
||2024.05.29
||2024.05.29
[산경투데이 = 박시수 우주산업 전문기자]
대한민국의 우주 정책은 ‘민간 주도’라는 세계적 흐름에 보조를 맞추며 진화하고 있다.
기존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을 통해 확보했던 국가 우주 자산을 이제는 민간 조달을 통해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관련 기업의 육성을 위한 재정적, 정책적 지원도 확대되고 있다.
우주 발사체와 저궤도 군집위성 구축 같은 국가 전략 프로젝트에 기업을 적극 참여시키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도 국제적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에 보조를 맞추지 않는 영역이 있다. 바로 유인 우주 미션과 우주정거장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소수의 우주개발 선진국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유인 우주 미션은 그 전략적 가치가 커짐에 따라 인도와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개발 도상국과 액시엄 스페이스 같은 민간 기업이 적극 진출하는 영역이 됐다.
우주정거장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2022년 말 ‘톈궁 우주정거장’을 완성하며 2001년부터 지속된 국제우주정거장(ISS)의 독점체제를 종식했다.
2030년으로 예정된 ISS의 퇴역에 대비해 러시아는 자체 우주정거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으며, 복수의 미국 기업들은 ISS의 퇴역을 기회 삼아 ‘우주정거장 비즈니스’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신흥 우주개발 강자로 떠오른 인도도 2035년 완공을 목표로 자체 우주정거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우주 정책에서 ‘유인’과 ‘우주정거장’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실종 상태다.
발사체와 인공위성 같은 ‘전통적’ 무인 프로젝트가 주축을 이루는 반면 유인 미션과 우주정거장 같은 차세대 프로젝트를 전담하는 조직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왜 ‘무인’(無人)의 틀에 갇혀 있는 걸까? 미래지향적인 답안을 구하기 위해 질문을 ‘유인 미션과 우주정거장이 왜 필요한가?’로 치환해 보자.
발사체와 인공위성 개발 능력을 보유한 나라와 기업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관련 기술과 제품, 서비스가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에 미치는 정도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이러한 흐름은 발사체와 인공위성이 협상 레버리지로서 갖는 가치의 하락을 초래한다.
따라서 국제협력을 통해 국가 우주역량 강화와 관련산업 육성을 달성하고자 하는 한국은 발사체와 인공위성 너머의 새로운 영역으로의 진출을 서둘러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우주정거장은 한국이 진출을 타진해 볼 만한 영역이다.
우주정거장이 외교·산업·과학 등 다양한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와 영향력을 가지는 인프라라는 것은 다수의 사례를 통해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막대한 비용이 듦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국제우주정거장(ISS) 운영에 수십 년째 참여하고 있는 것과 중국이 뒤늦게 자체 우주정거장을 건설한 것은 우주정거장의 전략적 가치와 영향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2021년 10월 발표된 ‘우주정거장과 국제정치'(Space Stations and International Politics)라는 연구 보고서는 ISS가 국제협력의 지렛대로 활용된 다양한 사례를 담고 있다.
미국이 ISS를 지렛대 삼아 발사체 기술을 인도에 수출하려던 러시아의 시도를 무마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은 톈궁 우주정거장에 외국 우주비행사의 방문을 적극 추진하고 있고, 정거장과 도킹할 수 있는 ‘슌티안 우주망원경’(Xuntian Space Telescope)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러한 작업은 모두 톈궁 우주정거장을 국제협력에 활용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우주정거장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쉽지 않다면 국제협력이나 파트너십을 통한 대안을 고려할 수 있다.
한국이 자체 우주정거장을 확보할 경우, 그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병행해야 하는 것이 있다.
자국 우주비행사의 정기적인 방문과 체류다. 정거장의 폭넓은 활용과 기술, 정보 등에 대한 보안 등을 고려할 때 한국 우주비행사의 정기적인 방문과 체류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주정거장의 가치 상승은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들어 우주정거장을 신약과 신소재 개발의 시험장으로 활용하려는 수요가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우주정거장의 산업적 가치가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 경기가 하강 국면임에도 불구하고 2030년대 운영에 들어갈 민간 우주정거장 건설 프로젝트에 투자금이 몰리는 것도 이 산업의 전망을 밝게 보는 또 하나의 근거다.
한국이 우주정거장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경제적 이유다.
최근 우주정거장을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의 테스트베드로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러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시설의 우주정거장이라는 인프라의 특성상 공급의 확대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우주정거장의 사용료는 지상의 시험 시설에 비해 상당히 높다.
현재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일주일간 테스트를 진행하는 데 드는 비용은 대략 10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테스트에 필요한 공간과 진행을 제공하는 대가로 관련 기술의 특허나 사용 권리 일부가 우주정거장 운영자에게 양도되는 경우도 있다.
공급자의 지위가 우월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스페이스X는 지난 2월 자사의 ‘크루 드래곤’ 우주선 내부에서 실험을 진행하길 원하는 기관과 개인의 신청을 받았는데, 선정이 되기 위해서는 우주선에서 진행된 실험에서 생성된 데이터나 샘플, 기술, 특허 등을 스페이스X가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조건에 동의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우주의학(space medicine)은 우주정거장의 경제적 가치를 잘 대변하는 분야다.
우주의학은 지구 밖에서 체류하는 인간의 건강관리와 우주의 무중력 환경을 활용한 신약 개발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지구 안과 밖 모두에서의 인간 웰빙(well-being)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다. 그만큼 미래 가치가 높고, 산업계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우주의학에 관심이 큰 대표적인 산업은 제약이다.
머크와 아스트라제네카 같은 글로벌 제약사는 이미 국제우주정거장(ISS)의 무중력 환경을 활용해 지구에서는 만들 수 없는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미세중력 환경을 활용한 인공장기 생산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 우주기업 레드와이어(Redwire)는 최근 자체 개발한 3D 프린터를 이용해 ISS에서 인간의 심장 세포 샘플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회사는 2023년 7월 ISS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인간의 무릎 반월상 연골의 샘플을 만드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이 밖에 다양한 기업과 대학, 연구소가 미세중력 환경에서 인공장기를 생산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우주정거장은 인공위성이나 우주선 제작에 쓰이는 반도체와 로봇, 소재들의 성능이 검증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검증은 우주 환경을 모방할 수 있는 지상 시설에서도 실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한 검증에는 한계가 있으며, 실제 우주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술성숙도(TRL) 7, 8, 9등급(NASA 기준)을 받기 위해서는 우주정거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결국 우주정거장은 차세대 첨단 제품의 연구와 개발을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목과 같은 존재다.
다국적 경영 컨설팅 회사 맥킨지의 일란 로젠코프(Ilan Rozenkopf) 파트너는 2023년 10월 미국 CNBC와 인터뷰에서 우주를 활용한 신제품 개발 시장이 2030년까지 1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주개발은 지금까지 국가 브랜드와 이미지 구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닐 암스트롱이 해낸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은 ‘미국은 최고의 과학기술 선진국’이라는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고, 스페이스X의 성공은 이를 공고히 했다.
여기에 미국은 ‘아르테미스’라는 유인 달 탐사를 통해 또 한 번의 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공식은 한국에도 유효하다.
문제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이다. 추구할 만한 방향에 대한 힌트는 지난 4월 10일에 열린 미국·일본 정상회담의 결과물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공동성명에서 양국 정상은 미국이 주도하는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 우주비행사 두 명을 달 표면에 보내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일본 우주비행사의 달 착륙은 이르면 2028년에 실시될 것으로 보인다. 성공할 경우 일본은 미국에 이어 유인 달 착륙에 성공한 세계 두 번째 나라가 된다. (중국은 2030년을 목표로 유인 달 착륙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이 미국과 치열한 협상을 통해 달 착륙 티켓을 얻어낸 것은 그것이 상징하는 과학 기술적 성과와 사회, 문화, 역사적 의미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이다.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일본 유인 달 착륙 합의를 통해 “중요한 이정표들이 달성됐다”(important benchmarks are achieved)고 말했다.
국가 브랜드 차원에서 유인 우주 미션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직 달성한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훨씬 더 많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우주에 처음으로 진출한 지 60년이 지났지만, 활동 반경은 아직 지구 저궤도에 한정되어 있고, 기간도 수개월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과 함께 그 영역과 기간도 커질 것이고, 더불어 새로운 ‘세계 최초’ 타이틀도 늘어날 것이다.
중국이 톈궁 우주정거장 완공한 후 현재까지 정기적으로 실행하고 있는 것이 있다.
우주정거장에 있는 우주비행사들이 지상에 있는 중국 학생들과 화상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우주 환경의 특징을 보여주는 실험을 중계할 때도 있고, 우주비행사와 학생들이 실시간으로 질의응답을 갖기도 한다.
이를 통해 학생은 우주에 대한 꿈을 키우고, 중국은 우주개발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한다. 로켓과 인공위성이 전부인 한국에서 이러한 방식의 소통과 인재 양성은 아직 요원한 희망이다.
오늘의 결정이 미래를 좌우한다. 한국 우주개발에 크고 장기적인 밑그림과 전략적 결정이 절실한 순간이다.
대한민국의 우주정책은 현재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무인 프로젝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유인 미션과 우주정거장 건설을 통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다.
국제 협력의 확대, 고부가가치 산업 창출, 국가 브랜드 강화, 그리고 상상력과 인재양성을 통한 미래 준비 등, 여러 면에서 유인 우주 미션과 우주정거장이 필수적이다.
이제는 무인에서 유인으로의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