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 정비 시급…“이러다 다 죽어” ③ [위기의 K방송]
||2024.05.30
||2024.05.30
우리나라 방송산업이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제도와 방송 플랫폼·콘텐츠 제작사 등 이해관계자 간 갈등이 해를 거듭하도록 이어진다. OTT가 성장하면서 유료방송업계는 역성장했고 OTT와 제작사는 적자에 시달린다. IT조선은 국내 방송업계 위기 상황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IPTV·종합유선방송(SO)·위성방송 등 유료방송 업계가 위태롭다. 누군가가 부도 나거나 사업을 중단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업계는 그 원인으로 너무 늦은 정책·제도 정비를 꼽는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지난 수년간 방송법 정비를 추진해 왔다. 매 년 국회에서 개정법이 발의됐지만 계류하다 폐기됐다. 방송장악 같은 정치적 이슈에 밀려 통합 미디어법(통합 방송법) 논의가 진척되지 않아서다.
콘텐츠 투자가 위축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투자 활성화를 위한 콘텐츠 투자비 세액공제는 기획재정부의 반대에 가로막혀 있다. 유료방송·OTT·방송사 등 외주 제작사에 투자하는 사업자 수익은 줄어드는 가운데 제작비는 급격하게 오르며 투자가 점점 위축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2022년 기준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공표와 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에 따르면 IPTV를 제외한 방송사업자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감소추세를 보였다. 종합유선방송(SO)으로 분류되는 케이블TV는 방송사업매출까지 감소세다.
SO는 2022년 매출이 전년 대비 2.7%, 위성방송은 같은 기간 2.9% 감소했다. 영업손익은 더 상황이 어렵다. 지상파, SO, 위성방송, PP 영업이익은 모두 전년 대비 2022년 두 자릿수 이상 감소했다.
유료방송이 무너지면 방송 콘텐츠 제작사가 콘텐츠를 공급·제공할 창구가 줄어든다는 점도 문제다. 방송 콘텐츠 제작사가 콘텐츠를 공급할 창구가 줄어든다는 건 이들이 제작한 콘텐츠가 악성 재고가 된다는 셈이다.
악성 재고를 줄이려면 콘텐츠를 덜 만들어야 한다. 실제 최근 드라마 편성이 줄어들면서 드라마 제작건수가 감소하자 배우, 촬영 스태프 등이 일자리 위기를 맞이했다. 정경호, 이주승 등의 배우가 최근 유튜브나 지상파 방송에 출연해 촬영하던 작품 제작이 무산됐다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제작비는 계속 오른다. 2022년 국내 방송 콘텐츠 제작에 드는 비용은 전년 대비 10.9% 오른 2조8774억원으로 집계됐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22년 기준 국내 방송사업자 및 OTT사업자의 수요는 줄었지만 넷플릭스의 국내 콘텐츠 수요가 여전히 높아 넷플릭스 영향력이 강화되고 있다고 봤다.
유료방송, 방송채널, 방송프로그램 제작사, 국내 OTT 등 국내 방송산업 생태계 구성원 중 어느 한 곳이라도 무너지면 산업이 해외 플랫폼에 장악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업계는 이 같은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방송법 전체 정비가 필요하다고 이미 수년 전부터 요청해 왔다고 토로한다.
업계는 지상파, 케이블TV, IPTV, OTT 등 미디어를 한 번에 아우르는 통합 미디어법 제정이 10년 넘게 추진만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현행 방송법은 2000년에 제정된 이후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정부와 국회는 방송법 개정을 꾸준히 추진은 했지만 정작 필요한 부분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방송법이 정치 화두와 엮이거나 국회 정쟁 속에 점점 잊혀져서다.
실제 방송통신위원회의 올해 업무계획에도 지상파·케이블TV·IPTV· 통합 미디어법(방송법) 제정 추진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 역시 실현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2대 국회에서도 통합 방송법 대신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방송3법은 21대 국회 당시 공영방송 장악 문제로 여야가 정쟁을 벌였던 법률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21대 국회에서 발의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법안’을 전부 재발의할 계획이다. 이 안에 방송3법도 포함된다.
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방송법 개정이 2000년 이후 제대로 이뤄진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아직도 IPTV는 IPTV 특별법, 케이블TV는 케이블TV 특별법으로 규제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방송법이 개정돼야 시행령 개정이나 규칙 개정을 통해 실무단에서 적용될 세부 내용도 변할텐데 규제 완화한다 완화한다 해놓고 법이 그대로면 그냥 계속 이렇게 말라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국무총리 직속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융발위)가 올해 3월 낡은 방송규제를 완화 및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그 계획은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실현된다"며 "몇 년도인지 그 숫자와 담당자 이름만 바뀌지 통합 방송법 마련이나 방송법 개정처럼 정작 필요한 건 바뀌질 않아서 속도감 있게 필요한 논의와 입법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변인호 기자 jubar@chosunbiz.com
